영국 해외정보국(MI6)과 통신감찰청, 경찰이 모인 '합동테러분석센터(JTAC)'가 2005년 6월 경계 수준을 한 단계 낮췄다. JTAC는 네 해 전 9·11 테러 때 내린 경계태세 '전반적 심각'을 '상당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G8 정상회의가 코앞에 닥쳤지만 태연했다. "영국에 직접 위협은 없다"고 했다. 한 달 뒤 런던은 나치 공습 이래 최악이라는 자살 테러에 당했다. 지하철역 세 곳이 무너졌고 이층버스 한 대가 날아갔다. 56명이 죽고 700명이 다쳤다.
▶2010년 CIA는 6·25 관련 전문(電文) 수백 건을 비밀 해제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보기관으로서 결정적 오판(誤判)을 내렸다." 1950년 1월 CIA 보고서는 '북한군 증강에도 남침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남침을 엿새 앞둔 6월 19일에도 '북한이 한국에 사보타주를 펼치고 있지만 전쟁이 임박하진 않았다'고 했다. 막상 전쟁이 터지자 CIA는 '우리 극동 요원들 얼굴이 창백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군사 참모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오판을 제대로 반성하고 고치지 못하면 오판이 오판을 낳는다. 남침이 없을 것이라고 우겼던 CIA는 그 해 9월 "중공군이 개입할 근거는 없다. 북한의 패배가 닥쳤다"고 고집을 피웠다. 6·25 때 백악관 안보회의에 CIA 국장은 끼지 못했다. 판사도 죄 없는 사람을 징역 살리고, 의사도 병을 잘못 짚는다. 그러나 군사·정보 기관의 오판은 한 나라를 벼랑으로 몰고 간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12일 국회 보고에서 "북한이 오늘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11일까지도 정부는 "북한이 이번 주에 발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발사 시한을 29일까지 연장한다"고 한 북한 발표만 믿고 통합태스크포스 책임자를 소장에서 준장으로 낮췄다. 11일 늦게 미사일 발사체가 장착돼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것을 '준비'로 봤지 '발사 임박'으로는 보지 못했다.
▶오판은 대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나온다. '북한은 이럴 것이다' '로켓 발사는 이렇게 할 것이다' 같은 선입견이 쌓여 오판을 낳고 온 국민이 눈 뜨고 당하게 만들었다. 몇 해 전 미국 학자와 언론인이 '대통령의 오판'이란 책을 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부시까지 20명 대통령의 오판 사례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국정원·국방부·외교부는 '오판 백서(白書)'라도 만들어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