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짜리 100년짜리… 다이어리 '1년'을 벗다

    입력 : 2012.12.12 03:02

    진화하는 다이어리 디자인
    두께 6.5㎝ '100년 일기장' 등 10년 이상 쓰는 제품 등장
    1000만원짜리 악어가죽 표지 2만~3만원짜리 手제품도
    단순히 기록의 물건 아닌 철학과 취향 담는 그릇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이달호씨는 매년 연말이면 수공(手工) 가게에서 다이어리를 맞춤 주문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겐 새해를 맞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전 매일 하루를 손으로 기록해야 성이 풀려요. 노트도 좋은 걸 고르고, 식물성분으로 가공한 천연 가죽을 표지로 씁니다."

    다이어리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품 중 하나다.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에 중요 일정을 기록한다. 바로 이런 다이어리의 '위기'가 다이어리의 '진화(進化)'를 앞당기고 있다.

    매년 다이어리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 중 하나인 교보문고 '핫트랙스' 측은 "최근 '프리미엄'이란 이름을 붙인 값비싼 다이어리가 크게 늘고 있다. 수백만원짜리도 있다"고 했다. "다이어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담는 철학의 상품이자 취향을 보여주는 과시의 제품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1000만원이 넘는‘스미스슨’의 악어가죽 다이어리, 레고 디자인을 본떠 만든‘미니 블록’일기장, 잉크 번짐 방지 종이로 만든 ‘로이텀’제품.
    다이어리를 쓰면서 '생애'를 디자인하다

    몇년 전만 해도 다이어리는 한 해 동안 쓰고 버리는 제품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5년·10년, 많게는 100년까지 한 권에 모아 기록하도록 만든 제품이 크게 늘었다. "시간과 생애를 디자인하는 게 다이어리"라는 철학을 담은 제품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온라인쇼핑몰 '펀샵'은 최근 영국에서 수입한 '100년 일기장'을 내놨다. 두께 6.5㎝, 무게는 1.45㎏이다. 회사는 "하루나 한 달, 1년의 일정과 목표를 적는 다이어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젠 모래처럼 흩어질 긴 시간을 한데 모아 기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가네쉬 10년 다이어리'도 10년의 장기 목표를 담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돌아보기' '한 해의 지출 결산' '미래 이력서' 등을 쓸 수 있다. 화가 육심원이 만든 '10년 다이어리'는 매년 1월 1일엔 뭘 했는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똑딱똑딱 움직이는 시계가 붙어 있는 '워치 다이어리'도 있다. 이를 만든 디자이너 송원준씨는 "흘러가는 시간을 눈으로 보면서 글을 쓸 수 있다. 결국은 시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다이어리라는 뜻"이라고 했다.

    (왼쪽부터)한손으로 쥐기에도 버거운‘100년 다이어리’, 거리의 담벼락 사진을 모아 만든‘월스 노트북’. 속지에 글씨를 쓰면 마치 벽에 낙서를 하는 것 같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노트 한가운데 시계가 박힌‘워치 다이어리.’ /핫트랙스·위즈위드·메리고라운드·펀샵 제공
    '생각'의 그릇, '취향'의 그릇

    고가(高價) 제품도 크게 늘었다. 영국 럭셔리 문구 스미스슨(Smyth son)에서 나오는 가죽 다이어리는 7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한다. 천연 악어가죽으로 만든 내구성 있는 제품이라는 게 업체 측 설명. 핫트랙스 측은 "불황일수록 10만원 넘는 제품도 잘 팔린다"고 했다.

    수제·무지(無地·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것) 노트일수록 잘 팔리는 것도 최근 현상이다. 텅 빈 노트인 독일 다이어리 '로이텀'은 잉크 번짐을 방지하는 종이 재질로 만들어 한 권에 1만5000~2만원가량 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활동하는 핸드메이드 디자이너 정은정씨는 일일이 손으로 수를 놓고 기워 만든 '포트폴리오' 다이어리를 출시했다. 얇은 노트 하나에 2만~3만원씩 한다. 정씨는 "브랜드보단 내실과 수작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일수록 우리 제품을 찾는다"고 했다.

    옷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한 패션용어 사전과 스크랩북을 합친 다이어리 '패셔너리'도 있다. 이달호씨는 "다이어리는 이제 그 사람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릇"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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