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세상을 좌파와 우파로만 구분하지 말라"

    입력 : 2012.12.09 23:30

    '선거의 해' 맞아 지구촌 곳곳에서 제3정당 돌풍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 폭발
    기성 정당들이 소화하지 못하면 더 큰 흐름 이룰 것

    강인선 국제부장
    "세상을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 똑같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과 부정직한 사람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요즘 지지율 2위를 기록하는 정당 '오성(五星)운동'을 이끄는 코미디언이자 블로거 베페 그릴로가 한 얘기다. 오성운동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권을 공격하면서 좌·우파를 넘어서 제3의 정치 세력을 찾는 유권자들을 끌어들여 최근 지방선거에서 선전했다. 이 정당은 온라인으로 후보를 선출하고, 전업주부·노동자·실업자 등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십 개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는 전(全) 지구적 정권 교체의 해인 올해, 아메리칸스 일렉트·영국독립당·해적당 등 기존 정치와 다른 제3의 길을 찾는 정당과 정치 운동이 주목받았다. 한국의 안철수 현상, 일본의 하시모토 현상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정치권의 눈으로 보면 '애들 장난'이자 '아마추어 활동'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제3정당과 제3 후보에 대한 호응이 예상 외로 컸다는 건 많은 나라에서 공통 현상이었다.

    독일에선 20~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해적당이 선전했다.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땋은 새로운 스타일의 젊은 정치인들은 관료주의적인 기존 정치권을 휘저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터넷에서 24시간 가동되는 정치 포럼을 열고, 당의 결정에 모두가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이념과 정치색에 기반해 입장이 변하지 않는 기존 정당과 달리, 자기들은 사람들의 관심사에 따라 당론(黨論)을 변화시키는 '유권자 친화적' 정당임을 강조했다. 해적당은 지난해 9월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8.9%를 올렸고, 지난 5월에는 13% 지지율로 녹색당에 버금가는 인기를 과시했다.

    미국의 초당적 정치 단체인 아메리칸스 일렉트는 좀 더 새로운 실험을 했다. 양당제가 확립된 미국 정치에서 과거 제3 후보나 제3정당의 등장은 대부분 '인물' 중심이었다. 1992년 로스 페로, 2000년 랄프 네이더처럼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스스로 대선에 뛰어드는 식이었다. 하지만 민주·공화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힘이 부쳤다.

    그래서 이번엔 방법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초당적인 제3 후보의 필요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뭉쳤다.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돈을 모아 조직을 만든 후 후보를 추대해 새 정치를 해보기로 했다. 지난봄 여론조사에서 11월 대선 때 제3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응답자가 40%나 됐으니 한번 해볼 만했다. 하지만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해 결국 이 운동은 실패했다. 선거 전략가 마크 매키넌은 "정치가 너무 추해져서 좋은 사람을 후보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1월 대만을 시작으로 3월엔 러시아, 5월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바뀌었다. 중국에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체제가 들어섰고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 대선과 일본 총선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다"는 말은 어느 나라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올해 지구 상에서 치러진 크고 작은 선거를 관통하는 두 동력은 현실에 대한 분노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희망은 선거 전략도, 대안도 안 되는 시대라는 말도 나왔다. 소위 제3 세력이 선거의 불쏘시개였네 치어리더였네 말이 많지만, 이들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좌절을 가리키는 나침반인 것은 맞는다. 제3의 정치에 대한 기대가 기존 정치권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다면 4년 후, 5년 후엔 이들이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더 큰 흐름과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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