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개인돈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의 신임대표… 최신원 SKC회장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2.12.10 03:03

    "죽어서 우리가 무엇을 갖고 가겠나… 나는 수목장 위한 나무 한 그루면 돼"

    '을지로 최신원' 이름으로 기부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
    잠시 내게 맡겨놓은 것일뿐"

    "내가 회장이라고 다른 게 없어
    임직원들과 해병대 캠프 일곱 번
    환갑이 됐지만 똑같이 훈련 받아"

    최신원(60) SKC회장이 구면(舊面)처럼 “이게 얼마 만이야”하고 맞았을 때, 내가 언제 어디서 그를 만났는지를 기억해내야 했다. 사실은 첫 대면이었다. 그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약간의 반말투로 시작했다.

    “최형도 옛날에 말이 없었지? 내 다 알지. 그게 나와 통해. 내가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서는 수줍어서 말도 못 했거든. 그래서 아버님(최종건 SK 창업자)이 나를 해병대에 보냈어요. 그렇게 호되게 매 맞기는 처음이오. 해병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데 말이야. ”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해병대에 입대했으니 힘들었겠지요.

    “무슨 소리야, 우리 아들도 해병대에 보냈소. 돈이 어떠니 부유하니 그런 것 따지지 마. 죽을 때 돈을 갖고 가나. 나는 봤잖아. 아버님이 48세, 형님(최윤원)이 50세에 암(癌)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이분들이 무엇을 갖고 갔나. 갖고 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심으로 기부를 잘 하느냐, 남을 잘 도와주느냐일 뿐이지.”
    해병대 훈련캠프에서 최신원 회장.
    얼마 전 그는 개인 돈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티(honor society)’ 대표가 됐다. 그 모임에서 유일한 재벌 회원이기도 하다.

    “내가 기부를 자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 그런 마음이 아니야. 이 주머니에서 돈을 내면 저 주머니가 모르게 하라는 거잖아. 당초 내가 ‘을지로 최신원’이라며 기부한 것도 그런 뜻이지.”

    그는 IMF 사태 직후부터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왔다. 이 모금회는 2007년쯤에야 ‘을지로 최신원’이 재벌가의 ‘최신원 SKC 회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지금껏 17억38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다른 재벌 오너에게 ‘아너소사이티’에 가입하라고 권하진 않습니까?

    “권한 적 없어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있으니까. 자발적으로 들어오면 오는 거지. 지금 회원 수가 179명이오. 연예인도 있고, 조그만 기업을 하는 분도, 농사짓는 분도 있어요. 모두 자기 스스로 번 돈을 내놓은 거야. 정말 이분들을 존경해요.”

    ―재계에서는 개인 기부를 내세우는 회장님에 대해 “튄다”고 뒷말 하지 않나요?

    “지금 재벌 회장은 대부분 2세이고 나이로는 내가 중간쯤 돼요. 삼성 이건희 회장님이나 현대차 정몽구 회장님 등은 나이 차가 있으니 말씀을 안 하는 거지. 나이가 비슷했으면 그렇게 공격했을지 몰라. 또 내가 보여주기 위해 한번 해보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기부한다는 걸 아시니 지켜보는 거지.”

    ―개인 돈을 기부한다고 했는데, 출처가 물려받은 재산인가요, 연봉인가요?

    “봉급을 낼 때도 있고, 대개는 필요할 때마다 내 주식을 팔아서 내놓지. 뭘 걱정이야.”

    ―저는 팔 주식도 없으니….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 내 개인 주식 120만 주를 나눠줬잖아. 오너가 그렇게 한 것은 처음일 거요. 어차피 남는 게 사람인데,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오. 나는 아버님 대(代)에 고생하신 분들을 지금도 만나. 일 년에 두 번 여행가는데 내가 꼭 후원해드려. 인간은 베풀 줄을 알아야 해.”

    ―대기업 오너는 통상 회사 돈으로 기부하지요. 개인 기부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최형은 회사 돈으로 밥을 사먹어요? 그것과 같은 거요. TV에서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를 보면서 시작했어. 나도 자식이 있고 손주도 있으니까. 어떨 때는 그 사연이 너무 딱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요. 한 통에 얼마씩 하는 전화를 직접 걸 때도 있지. 주머니 좀 턴다고 내가 굶는 게 아니잖아.”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데, 마음이 여린 모양이군요.

    “내가 가장 보람 있을 때가 언제인 줄 알아요? 아버님이 나온 수원 신풍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린 걸 알고 지원해줬어요. 지난해 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아이들이 행복해한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지. 지난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나서 내가 임직원들과 함께 가서 직접 모래를 닦고 그쪽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어요.학생들이 ‘자기도 자라면 회장님처럼 그렇게 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어. 이럴 때 기분이 최고지. 나눔은 있는 사람의 의무라고 하지만, 사실은 특권이고 행복인 거지.”

    ―베푸는 것도 습관이지요?

    “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해오던 걸 보고 자란 게 있잖아. 할아버지는 경기도 수원에서 대지주였어요. 모 심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고, 이들이 일 마치고 돌아갈 때면 할머니는 가마솥 누룽지를 나눠줬어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잖아. 나는 그런 정신을 배웠다고. 오늘 내가 이 자리까지 있게 한 것도 할아버지와 아버님 덕이라고 생각해.”
    최신원 회장은 "얼마나 진심으로 남을 잘 돕느냐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그는 SK그룹의 전신(前身)인 선경직물을 설립한 최종건 회장의 차남이다. 최종건 회장이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뜬 뒤 동생 최종현 회장이 맡아 그룹을 키웠다. 최종현 회장도 69세에 폐암으로 숨지자, 아들 최태원 회장이 그 뒤를 이었다.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그에게는 사촌 동생이 된다. 최태원 회장 형제는 회사 돈 1960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인 투자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은 구속 수감됐었고, 최태원 회장은 얼마 전 4년형을 구형받았다.

    ―집안의 형으로서 사석에서 만나 충고를 했나요?

    “그러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같아. 어떻게 되어가나 지켜보는 거지.”

    ―회장님은 SK그룹 내 지분이 얼마 안 되는 걸로 압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 나이가 어렸어. 그래서 작은아버지(최종현 회장)가 물려받았어. 작은아버지 돌아가시고 SK그룹이 외국 투기 자본과 경영권을 다투게 됐어요. 그때는 한쪽으로 몰아줘야 힘을 받을 것 아니냐. 당시 5형제가 만나서 ‘최태원이 회장을 맡는 게 좋겠다’고 합의를 해준 것이지. 다 그쪽(최태원 회장)으로 넘겨줬어. 내 재산은 별로 없어.”

    ―재산 분배 과정에서 자기 몫을 못 챙겼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난들 왜 생각이 없었겠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잖아. 그때는 내 것 주장해봐야 소용이 있었겠어. 사실 2대 회장(최종현) 시절에 우리는 무시를 많이 당했어요. 아버님은 SK 창업자이면서도 거의 잊혔지. 그게 너무 안타까워. 하지만 나는 마음을 넓게 가져요. 만약 좁게 생각했으면 화병으로 어떻게 됐을거요.”

    ―내년에는 SK그룹으로부터 분가(分家)할 것이라면서요?

    “내년이라고 못박은 적이 없어. 넘겨짚어서 얘기하지 마.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재산 분배 때 우리가 양보한 만큼) 나는 최태원이를 믿고 있어.”

    ―회장님은 ‘내가 죽을 때 재산을 다 가지고 가겠나. 수목장 할 때 필요한 나무 하나 사놓으면 된다’고 말한 적 있지요?

    “내가 태어난 집에 나무 한 그루 심어놓았어요. 죽거든 내 뼛가루를 여기에 뿌려달라고 말해놓았어요. 무엇을 갖고 가겠어요.”

    ―혹시 종교가 있나요?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를 가끔 가요. 생전에 복덕(福德)을 쌓아야지. 그곳에 가면 식당마다 모금해달라고 내가 돼지저금통도 갖다 놨어요.”

    ―돈에 대한 철학은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잠시 내게 맡겨놓은 거지.”

    ―말씀만 그렇지, 내가 회장님 돈을 좀 갖고 가도 됩니까?

    “다 가져가(웃음). 남을 돕는 게 중요하지.”

    ―그런 마음의 자세로는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자선 단체를 만들어야지. 기업인의 마인드는 뭔가 더 이루려는 욕심에 바탕을 두는 게 아닐까요?

    “기업을 잘 경영하는 것도 내 의무요. 직책을 맡고 있으면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내가 만날 퍼주는 줄로만 알아? 공과 사는 달라. 다만 내 욕심만을 차리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는 2009년 미국 경제 주간지인 포브스 아시아판이 선정한 ‘기부 영웅’으로 뽑혔고, 얼마 전에는 세계 고액 기부자 모임의 한국 대표로 위촉됐다.

    ―회장님은 남을 잘 돕는 걸로만 이름이 알려졌어요. 기업인이란 경영 능력과 실적으로 우선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게 기업인 마인드가 어떻고 얘기했지요? 그런데 리더십이라는 게 뭔가요? ‘깃대’를 누가 먼저 꽂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깃대라니요?

    “솔선수범한다는 거죠. 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 가서 김장 5000포기 담그는 일을 돕고 왔어요. 내가 회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 임직원들과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내요. 보여주기 위해 사진 찍으러 가는 게 아니오. 어떤 회사도 제대로 되고 안 되고는 회장에게 달린 거야. 우리 회사가 어떤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알 겁니다. 내가 임직원들과 해병대 극기 훈련 캠프에 일곱 번이나 참가했어요. 환갑이 됐지만 똑같이 훈련을 받아요.”

    ―본인의 스타일은 선친을 닮았나요?

    “우리 아버님은 성미가 급하고 배포가 컸어. 앞날을 내다보고 신규 사업을 적극 개척했지요. 작은아버지(최종현 회장)는 꼼꼼한 성격에 치밀한 회사 운영을 했지. 나는 아버님을 닮았어요. 아랫사람에게 간섭을 잘 안 해. 전체적으로 잘 가고 있는지만 확인하지요.”

    ―가족 병력(病歷) 때문에 담배를 끊은 걸로 들었습니다만.

    “형님이 후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술 담배를 다 끊었어요. 자식을 앞세운 어머님 심정을 생각해봐요. 형님이 돌아가신 나이보다 두 배는 더 살면서 봉사해야 할 게 아니오.”

    ―봉사하는 것 말고, 인생의 즐거움이 뭡니까?

    “기업이 어려우니까 올해는 골프도 끊었어. 장(長)이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요. 이제 내가 사는 낙(樂)은 걷는 것이지. 하루 평균 1만5000보 이상 걸어요. 회사에 출근해 점심 먹으러 갈 때도 나는 늘 걸어서 다녀요. 이 고구마 맛탕은 최형이 오시면 출출할까 봐 아까 길거리에서 사온 거야. 나는 이런 걸 좋아해.”

    나는 접시에 놓인 고구마 맛탕 두 조각을 먹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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