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위만 쳐다보는 검사들 싹 다 갈아치워라"

조선일보
입력 2012.12.08 03:05 | 수정 2012.12.10 06:54

'영원한 중수부장' 심재륜, 위기의 검찰에 일갈하다

검찰 망신, 끓는다 끓어
관리자가 책임지면 될걸 대통령 신임 받겠다며 후배에게 같이 나가자고?

뇌물 검사, 최고형 엄벌을
검사로서 사명감 없이 대한민국 검찰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범법자

"중수부 폐지 안된다"
전직 대통령 2명 등 구속 그 노하우 사장해선 안돼… 상설 특검으로 가더라도 눈치 안보게 꼭 독립시켜야

1999년 성명 파동 1호
대전 법조비리 변호사가 내게 떡값 줬다고 하자 총장이 옷벗으라고 해… 너무 기막혀 성명서 낸 것

'수사十訣' 화제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 굴복 대신 승복 받아내라, 毒이 든 범죄정보는 피하라, 수사중 곁가지를 치지마라…

영화 '공공의 적' 실제 모델
특전사 軍법무관 재직때 실미도사건 현장서 목격… 강우석 감독 영화 자문했지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 부는 북풍(北風)이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조직 전체가 궤멸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뇌물 검사, 섹스 검사, 브로커 검사 같은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거기서 쏟아지고 있다.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이 서로 칼을 겨누기도 했다. 뻔한 싸움에 뻔한 결말이었고 체면만 더 떨어졌을 뿐이다. 지금 검찰은 정치권에 운명을 맡긴 상태다. 개혁안이 속출하지만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심재륜(沈在淪·68)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 아들을 잡아넣고 조폭 김태촌에게 콩밥을 먹인 국내 최고의 '칼잡이'에게 후배들의 추락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극으로 비칠 것이다. 최고의 '강력통'이자 '특수통'인 그는 '심통'으로 통한다. 고집 세고 정권 협박에 끝까지 버텨 그런 별명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터뷰는 안 된다"고 버티더니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세월이 그를 부드럽게 만든 것 같았다.

전설적인 검사로 불리는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이 최근 검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하며 정치권에서 내놓은 대검 중수부 폐지 공약이 거악(巨惡)에 대한 수사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성형주 기자
전설적인 검사로 불리는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이 최근 검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하며 정치권에서 내놓은 대검 중수부 폐지 공약이 거악(巨惡)에 대한 수사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성형주 기자
"한상대는 역대 최악의 총장"

현역 때 심재륜이 남긴 수사십결(搜査十訣)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 '굴복 대신 승복을 받아내라' '끈질긴 수사도 좋지만 외통수는 금물이다' '수사하다 곁가지를 치지 마라' 등이다.

―그런데 지금 터지는 검사 비리는 전부 곁가지 치다 일어난 일 아닙니까? 뇌물 받고 여자와 섹스하고.

"접두사만 바뀌며 연일 무슨 일들이 터지니 곁에서 보기에도 민망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법조 인력이 너무 많아지면서 자질이 떨어졌어요. 과거 소수정예 때 '특권'이라는 비판이 많아 늘린 것인데 질(質)이 하락하는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그러다 보니 수사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안 되고 외압에도 쉽게 흔들리게 됐죠."

―그렇다고 다시 검사 숫자를 줄일 순 없는 거 아닌가요.

"줄일 수는 없죠. 지금이라도 수사 전문 교육기관 같은 것을 내부에 만들어 자질을 높여야 합니다. 물론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는 없지만요. 내부에서 숨은 인재 발굴도 해야겠지요."

―김광준 검사는 돈을 꽤 많이 받았습니다. 스폰서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인가요?

"그 친구는 법정 최고형을 검찰이 구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로서 사명감이 전혀 없이 조직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까요."

―섹스 검사는요?

"그 녀석은, 참…. 사정은 짐작이 가요. 말할 수는 없지만. '초짜'검사일수록 더 주의해야 하는데."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중수부장의 격돌도 볼만했습니다.

"전 한상대를 사상 최악의 검찰총장이라고 봅니다. 왜 검사 개개인의 비리를 제도 개혁과 맞물리게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자기가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면 될 일을. 그리고 뭐라고 했어요. 후배들에게 '같이 나가자'고? 그 사람은 검찰 전체로 보면 배신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다른 검사들도 비슷한 반응입니다.

"그게 다 대통령 신임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말은 안 하려 했는데 뭐? '떠나는 자는 말이 없다'고? 말이 없는 자가 퇴임식은 왜 하는 겁니까."

―검찰을 향해 '오만한 내부'라고도 했습니다.

"뭐? '오만한 내부'? 그것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검찰 전체에 대한 저주입니다. 자기 무능한 탓은 하지 않고 저주나 퍼부으며 나가다니."

―사실 과거 총장들은 검찰에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책임을 지고 나갔지요.

"이명재 총장 같은 분은 고문 시비가 일자 곧바로 옷을 벗었잖아요. 그건 검사로서의 책임이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책임이 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재경 전 중수부장도 이유야 어쨌건 상사에게 대든 것 같은 모양이 됐습니다.

"사실 최 중수부장은 아까운 사람입니다. 검사로서 기개도 높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줄도 알고. 무능한 검찰총장이 유능한 후배까지 끌고 나가는 꼴이 됐지요."

"중수부 폐지는 안 돼"

검찰이 나락으로 추락하면서 박근혜-문재인 두 대통령 후보의 개혁 방안이 발표됐다. 누가 권력을 쥐든 검찰에 칼을 들이댈 것이다. 칼(劍)을 휘둘러온 쪽에서 되레 칼을 맞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수뇌부는 공백 상황이다.

―대검 중수부는 폐지될 운명 같습니다.

"중수부 폐지는 안 됩니다. 독립 기구로 만든다면 이름 정도 바꾸는 건 괜찮지만요. 대검 중수부가 생긴 지 50년쯤 되는데 비판도 많았지만 거악(巨惡)도 많이 척결했잖습니까.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하고 전직 대통령 아들도 두 명이나 구속하지 않았습니까? 그 노하우를 사장할 수는 없지요."

―중수부를 없애도 지검 특수부에서 수사하면 되지 않나요.

“그건 사정을 모르는 얘깁니다. 작은 사건은 몰라도 큰 사건은 안 됩니다. 피의자를 불러도 오지 않을뿐더러 인력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피의자가 지검 특수부엔 안 오는데 중수부에는 왜 올까요.

“대검 중수부의 권위가 있고 인력이 있고 언론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사실 검찰은 언론과 함께 가야 합니다.”

―왜요?

“재벌이나 고위 공직자를 수사할 때 제일 먼저 생기는 일이 뭔지 압니까? 수사 검사와 친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겁니다. 그들을 통해 ‘목숨 좀 살려달라’고 하면 인간적 정리를 뿌리치기 힘들죠. 청와대 같은 곳은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런 상황에서 일개 검사가 수사를 할 것 같습니까? 대검 중수부는 다르죠. 언론이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사실 제가 인천지검에서 중수부장이 된 것도 언론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상설 특검 방안은 어떻습니까.

“상설 특검이 된다면 중수부와 비슷한 수사를 할 수 있긴 해요. 다만 비전문가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전문가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경험이나 지식이 없으면 휘둘리기 쉽죠. 대신 상설 특검에 꼭 조건이 붙어야 합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상설 특검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설치하면 안 됩니다. 누구 직속이 되면 그 순간부터 권력의 영향을 안 받을 도리가 없게 됩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같은 것도 독립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윗사람 눈치만 볼 거 아니겠어요?”

―검찰 내부에 차관급만 50명이 넘는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건 이유가 있어요. 검찰이 50명이라지만 법원이 100명이 넘습니다. 영국의 판사들이 지금도 옛날식 가발을 쓰고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사와 판결에는 소위 ‘영(令)’이 서야 합니다. 검사와 판사가 하위직이라면 영이 서겠습니까? 그건 신뢰의 문제지요.”

―그래도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지금보다 조금 줄이는 것은 몰라도 전부를 낮춰선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게 도입되면 지검 차장과 고검 부장들이 손해를 보겠구먼.”

―검찰총장직을 외부에 개방하자는 말도 있습니다.

“외부에 개방하면 권력 바람을 더 탈 텐데. 차라리 저는 대통령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발하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사실 검찰총장 2년 임기제도 검찰 독립이 목적이었는데 2년 후를 대비한 로비가 더 심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정권에선 말랑말랑한 사람을 뽑으려고 하고요.”

―그런데 심 변호사가 꼽는 최고의 총장은 누굽니까.

“이명재 총장, 송광수 총장 정도가 아닐까? 그다음은 뭐….”

"검사는 인사에 약하다"

심 변호사는 사시 7회 출신이다. 당시 합격생이 5명에 불과했다. 그는 그때 차석(次席)을 했다. 연수 과정인 서울대 법대 대학원은 수석 졸업했다. 천재라고 할 법한데 그는 ‘만재(萬才)’가 없는 ‘천재(千才)’라고 할 뿐이다.

―정권은 인사를 할 때 뭘 제일 따집니까.

“예나 지금이나 충성도가 으뜸이지요. 그다음이 능력과 자질이고요. 그런데 다른 측면도 있긴 합니다. 충성심 강한 사람을 뽑아놓으면 좋을 것 같지만 과잉 충성이 문제거든. 지금 검찰 수뇌부에도 그런 사람이 있긴 해요.”

―누굽니까, 그분이.

“내 누구라 이름을 대긴 그렇지만 수사 상황을 설명하면서 기자들에게 청와대 핑계를 댔다니. 자기는 기자들이 모두 자기편인 줄 알겠지만 가증스럽지 않아요? 전 그 사람의 의식구조를 의심합니다. 아직 안 나가고 있지만 그런 사람들 이번 기회에 싹 물갈이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갔으니 유혹에 약한 것 아닐까요?

“검사에게는 유혹이 참 많습니다. 사방팔방 조사해 가장 어려울 때 뇌물을 들이대면 거절하는 게 백배 더 어렵지요. 압력도 그래요. 압력은 항상 슬그머니 다가오거든요. 처음엔 약점을 파고들다 그게 안 되면 소중한 사람을 파고들고. 그다음엔 직접 테러를 가하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위험 때문에 몇 차례나 가족을 지방으로 부른 적이 있어요.”

―청와대가 쥔 힘이 결국 인사권일 텐데, 검사들이 인사에 민감하긴 하죠.

“민감할 수밖에 없죠. 대부분 우수한 인재인데 서울에서 군산이나 해남이나 강원도 같은 곳에 보내보세요. 동기는 승진하는데 나만 제자리면 화가 날 수밖에 없겠지요. 저도 검사 생활 30년 동안 28번이나 보직이 바뀌었습니다. 들은 이야긴데 어느 장관이 인사철에 받는 청탁 메모가 수백 장이라더군요. 군대보다 더 인사 교체가 많고 조직원들이 신경 쓰는 데가 검찰입니다.”

―그렇다고 한곳에만 계속 있으면 이른바 향판(鄕判)처럼 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신뢰 사회와 불신(不信) 사회의 차이라고 봅니다. 유럽 같은 곳은 아무리 한곳에 있어도 토착 세력과 밀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없어도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싸늘하지요. 검사와 판사의 교류 제도 같은 것도 생각해볼 만하고요.”

―평생 검사제는 어떤가요.

“용퇴(勇退)하는 문화 때문에 아까운 인재들이 너무 일찍 나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요. 평생 검사제라는 게 사실 정년(63세)을 보장해주면 되는 것인데 여기도 주의할 게 있긴 합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눌러앉아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시험 한번 붙어서, 요즘 같으면 로스쿨 나와서 평생 검사 노릇 하는 게 좋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예전의 고시(考試) 같은 것의 유래가 쌍기의 ‘과거제’ 아닙니까? 저는 시험제가 나쁘다고만은 보지 않습니다. 공부만 갖고도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아까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의 갈등을 이야기했지만 ‘항명(抗命) 파동’ 1호는 심 변호사 아닙니까.

“그건 항명 파동이 아니라 성명(聲明) 파동이지. 1999년의 일인데 대전 법조 비리의 장본인인 변호사가 내게 떡값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김태정 당시 총장이 저를 비롯해 사건과 관계된 검사 전원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고요. 하도 기가 막혀서 남기춘 검사에게 그 변호사를 면회해 ‘무슨 말을 했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고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때는 또 증거 인멸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진짜 아무것도 안 먹었습니까.

“내가 먹긴 뭘 먹어요. 한두 번인가 만나 폭탄주 나눈 기억밖에 없는데. 그때 국산 양주 한 병이 큰 건 7만원, 작은 게 5만원인데 한 번에 100만원어치를 먹었다니.”

―그때가 대구 고검장 시절입니다.

“그해 1월 27일 서울 대검 기자실로 올라왔어요. ‘정치권력의 시녀(侍女)인 검찰 수뇌부도 함께 퇴진하자’는 성명을 냈지요. 그러자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번엔 금품·향응 수수가 아닌 ‘근무지 이탈’죄를 적용해 파면했습니다. 명예는 회복해야겠다 싶어 소송을 걸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이겨 잠시 복귀했다 떠났지요.”

YS 아들 김현철씨 구속시킨 중수부장 시절 1997년 5월 심재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수사 진행과 구속시기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있다. 현철씨는 이후 대통령 아들로는 처음 구속됐다. / 조선일보DB
YS 아들 김현철씨 구속시킨 중수부장 시절 1997년 5월 심재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수사 진행과 구속시기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있다. 현철씨는 이후 대통령 아들로는 처음 구속됐다. / 조선일보DB
영화 ‘공공의 적’의 실제 모델

그가 거친 사건은 하나같이 굵직하다. ‘장영자 어음 사기’ ‘한보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 ‘서방파 두목 김태촌 구속’ ‘연세대 교수 마광수 사건’…. ‘칼잡이’ 심재륜은 “손에 정말 피를 많이 묻힌 것 같다”고 했다.

―그때 같이 올라온 검사가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입니다.

“‘같이 서울로 올라갈 수 있겠느냐’고 하는데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르더군요. 정말 미안했어요, 그때.”

―그분이 한화 사건 수사하다 옷을 벗었습니다.

“꽤 괜찮은 검사였는데….”

―얼마 전 김승연 회장이 교도소에 간 지 100일쯤 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한화 쪽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쪽에선 억울해하더군요. 어떤 건(件)을 쫓다 안 나오니까 다른 걸 털었다고.

“제 수사십결 가운데 5번이 ‘곁가지 치지 마라’는 것인데, 남 검사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머지 수사십결은 뭡니까?

“상사를 결코 적으로 만들지 마라, ‘독(毒)’이 든 범죄 정보는 피하라,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언론과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라, 칼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나도 다친다는 것입니다.”

―현역 시절 김현철씨 사건은 당시 정말 큰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 밝힐 순 없지만 다른 일도 있긴 한데…. 그는 그때 무소불위(無所不爲)였어요. 제가 직접 수사한 사건 비화를 월간조선에 1년 연재했습니다. 읽어보시면 참고가 될 거예요.”

―중수부장 거친 분 중에 검찰총장 되는 분이 많습니까?

“꽤 될걸요?”

―그런데 그렇게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으면서도 고검장에서 끝난 게 충청도(대전) 출신이기 때문입니까.

“하하. 그런 면이 있긴 하지. 요즘이야 악에 받쳐 목소리를 높이지만 충청도는 무대접이었으니까. 사실 충청도보다는 전라도가 훨씬 나아요. 경상도는 말할 것도 없고. 힘 못 쓰는 곳은 충청도하고 강원도밖에 없지요.”

―이력을 뒤지다 보니 영화감독 강우석과 친하다는 데 눈길이 가더군요.

“내가 특전사 군법무관을 지낼 때 실미도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했거든요. 영화 ‘실미도’와 ‘공공의 적’ 시리즈를 자문해줬지요. 지금은 뜸하지만 한때 폭탄주 많이 했어요. 강 감독은 ‘강간독’, 꼴통 검사역으로 나온 배우 설경구는 ‘경구피임약’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그 꼴통 검사의 실제모델이 변호사님입니까.

“내가 초대 강력부장 출신이니 그렇게 봐도 틀린 건 아니지.”

―수사뿐 아니라 폭탄주로써 전설이시죠.

“(손을 휘휘 내저으며) 어이, 술 얘기는 절대 쓰지 마요. 그러지 말고 다 끝났으면 폭탄주나 한잔 하러 나가지.”‘칼’을 휘두르던 입장에서 ‘칼’을 막아내야 하는 처지가 된 그에겐 대형사건 수임 의뢰가 잇따른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BBK사건에 연루된 김경준이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사건을 치밀하게 검토해본 결과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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