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세계화… 서울의 집과 유럽의 집이 같다"

입력 2012.12.06 03:02

4.3 건축전 20년… 김인철·이성관·방철린의 한국 건축 진단
"20년 전엔 한국 건축 정체성 지금이라면 '나의 건축' 고민
후배 건축가들, 흡수 빠르지만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어"

1992년 12월 12일. 서울 인사동 인공갤러리에서 전도유망한 젊은 건축가들의 합동 전시가 열렸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란 주제 아래 14명의 30~40대 건축가가 선보인 '4.3그룹 건축전'. 이 전시는 우리나라 건축계에 중대한 변곡점이 된다. 건축비평가 이주연씨는 "4.3그룹은 외국 건축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했고 토목공사와 동일하게 치부됐던 우리 건축계에 '과연 한국 건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던 최초의 자생적 집단이었다"고 했다.

당시 패기 넘치던 건축가들은 지금 한국 건축계의 대표적인 작가들로 자리 잡았다. 본지는 '4.3그룹 건축전' 20년을 맞아 5일 당시 그룹의 일원이던 건축가 김인철(65·아르키움)·방철린(64·건축그룹칸)·이성관(64·한울건축)씨의 대담을 마련했다. 김인철씨는 서울 강남 교보문고사거리의 '어반하이브', 방철린씨는 '미제루', 이성관씨는 '용산전쟁기념관' 등의 대표작이 있다.

―4.3그룹은 어떻게 결성됐나.

방철린(이하 방) "1980년대 한국 건축계는 엄청난 호황이어서 건축가들에게 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매일 대형설계사무소에서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 데 회의가 많았다. 내 건축이 뭔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더라."

김인철(이하 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건축적으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최초의 질문이었다. 1980년대 김수근·김중업 같은 건축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작가주의는 사실 아주 개인적이고 극소수의 산물이었다. 그걸 좀 더 일반적으로 확산시키면서 회의하기 시작한 게 4.3그룹의 출발이었다."

―4.3그룹 활동을 건축계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는 이유는.

"4.3 이전에는 '건축=건설' 즉, 기술이었다. 설계를 잘한다는 건 주어진 프로그램을 잘 해석해 모양 좀 있는 집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4.3이 나오면서 비로소 건축은 종합예술이라는 담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개인의 그런 물음은 자연스럽게 '한국성(性)'으로 이어졌다."

―4.3이 주목한 '건축의 한국성'이란 뭔가.

"그건 한국 전통 건축, 또는 한옥과는 다르다. 이 땅에 짓는 건축(의 정체성)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학 1세대들이 들어와 서양 건축을 마구 풀어놓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들은 우리가 그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뭔가' 하면서 정체성을 모색하게 된 거다."

4·3그룹에 참여했던 건축가 방철린, 김인철, 이성관(왼쪽부터)씨가 5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 로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원 기자
 
―4.3 활동이 실제 자신의 건축으로 어떻게 이어지던가.

이성관(이하 이) "서로 비교하고 대조하고 자극받다 보니 나만의 언어를 갖게 되더라. 나는 장소성, 김인철 교수는 '없음', 방철린 선생은 '허(비다·虛)'를 주목한 것이 그 예다."

―'제2의 4.3'은 나오지 않았는데.

"신기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4.3 활동을 마무리 지었을 때 개인적으로 젊은 후배들이 5.6그룹, 7.8그룹이라도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없더라. 우리의 경우 일부 멤버가 만든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같은 조직은 건축사 시험제도 등도 혁신적으로 바꿔놨다."

"요즘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산발적으로 튀듯 개인주의적으로 움직인다. 건축이 제 몫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스터디그룹이 됐든 사회단체가 됐든 그런 모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4.3이 한국 건축의 주류가 됐다. 스스로 진단하는 한국 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너무 세계화가 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해야 하는 건축이 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작업이 너무 많다. 서울에 있는 집과 유럽에 있는 집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런데 같다."

"한국인은 집중력이 강하다. 뭐 하나 있으면 분석·해체해서 만들고 카피하고…. 건축도 빠른 눈썰미와 감수성으로 모양을 빨리 흡수해 잘한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좌절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

―2012년 다시 4.3을 한다면 어떤 주제를 내세울까.

"20년 전에는 14명이 생각하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이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14명 각자가 그리는 '나의 건축'이 될 듯하다."

―지금 다시 모일 생각은 없나.

"우리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일 뿐, 사실 한번 모이자 하면 다시 모일 수도 있다. 그저 휴전(休戰) 중이니까(웃음). 아직 전쟁 중 아닌가?"

☞4.3그룹

1990년 4월 3일 결성된, 당시 30~40대 건축가들 그룹. 서울대·홍익대 등 대학 동문회 수준에서 벗어나 지역·학벌·경향성 등을 초월해 한국 건축의 현주소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했던 최초의 젊은 건축가들 모임이다. 곽재환·김병윤·김인철·도창환·동정근·민현식·방철린·백문기·승효상·우경국·이성관·이일훈·이종상·조성룡(가나다순) 등 14명이 참여해 수십 차례의 심포지엄과 한 차례 건축전을 열고 두 차례 도록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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