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위급 숙청 X파일 만든 김정일, 간부들에 "읽어라"

    입력 : 2012.11.27 02:59 | 수정 : 2012.11.28 06:14

    본지가 26일 입수한 북한 노동당 내부서적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나가시는 나날에'(이하 '혁명대오')는 김정일 정권 시절 자행된 대표적 숙청사건들의 비화를 담고 있어 '숙청 엑스파일'로 불릴 만하다.

    "박남기는 장기간 암약한 남조선 간첩"

    박남기 전 계획재정부장은 1986년 12월 인민경제를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장에 발탁된 이후 24년간 북한 계획경제를 최일선에서 지휘했다.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18명) 단장 자격으로 한국을 8박9일간 둘러봤고, 김정일은 경제 현장 시찰 때마다 그를 대동했다. 2009년에만 북 권력층 중에서 셋째로 많은 77번이나 김정일을 수행했다.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한 박남기(당시 국가계획위원장·오른쪽에서 둘째) 단장이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를 찾아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혁명대오'는 그런 박남기에 대해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시기 복잡한 틈을 타 우리 대오 안에 기어든 적(敵)간첩으로, 사회주의경제 건설을 저지하고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끌어들이려다 덜미를 잡혔다'고 했다. 박남기의 실각 과정은 이 책의 제4장 '만고역적에게 내린 준엄한 철추'에 소상히 소개돼 있다.

    저자 리제강(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박남기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태생부터 문제 삼았다. '친일분자 첩×의 아들'이자 '지주의 외손자'로, 토지개혁 실시로 외조부가 토지를 몰수당하자 이에 대한 앙심과 옛 지위를 되찾으려는 야망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는 '한청 자위대'와 '금강 청년단'이라는 우익단체 활동에도 가담했지만 전후 신분을 세탁해 애국자로 행세했다고 리제강은 썼다.

    책에 따르면 박남기는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이 평양시의 난방과 식수 문제 해결을 지시했는데도 게으름을 피웠고,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때는 외화를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묵살했다. 2009년 11월 화폐개혁 역시 김정일이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제시했는데도 박남기가 이를 무시해 혼란이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화폐개혁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비등점에 이르자 박남기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박 "남조선 경제 수용" 자백

    책에 따르면 박남기의 '정체'는 2010년 1월 본부당(중앙당) 대논쟁(인민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김정일이 직접 마련한 이 재판에서 박남기는 "남조선식 경제 수용이 자본주의 제도로 복귀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여겨 시장경제를 도입하려 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즉시 김정일은 "그릇된 화폐교환으로 불편을 준 데 대해 인민들에게 사죄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2월 4일 당 간부들 앞에서 "박남기는 혁명대오 안에 기어든 간첩으로 앞으로 총리가 돼 자본주의 경제로 끌고 갈 흉심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다. 간부들은 "박남기 놈이 그런 역적이었다니"라며 경악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2010년 3월 "만고역적 박남기를 처형한다"고 선고했고, 선고 직후 박남기는 부하인 리태일 계획재정부 부부장과 함께 강건군관학교에서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그해 5월 "박남기의 죄행을 일꾼들이 똑바로 알아야 한다"며 리제강에게 "당 통보서를 작성해 하부 단위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리제강이 '혁명대오'를 집필하게 된 계기도 박남기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집필을 시작한 2010년 2월은 박남기 처형을 앞둔 때였다.

    앉아서 김정일 방침 전했다고 숙청

    2005년 10월 이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정하철 전 선전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은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 김정일의 오찬행사에 배석하고, 2001년 김정일의 중국(1월)과 러시아(8월) 방문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이 책에 따르면, 김정일은 2005년 6월 발생한 중앙방송위원회 직원들의 업무 중 음주사건을 계기로 조직지도부에 중앙방송위와 정하철에 대한 검열을 지시했다. 그 결과 정하철이 중앙방송위원장 시절 음주 문화를 퍼뜨렸다는 사실, 많은 여자와 치정관계를 맺은 사실, '혁명자금'을 탕진한 사실 등이 적발됐다.

    손에 피부병이 있는 여성 방송원 2명을 김정일 행사 참가자로 선발한 것, 김정일의 지침을 앉은 채로 전달한 점도 과오로 지적됐다. 정하철은 2005년 10월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다.

    2000년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리수길 전 양강도당 책임비서는 치정 문제와 간첩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사상투쟁회의에 회부돼 2급 탄광 당 비서로 좌천됐다. 대북 소식통은 "2001년 4월 혜산시에서 공개처형됐다"고 했다.

    탈북자들의 전언을 통해 국내에도 알려진 채문덕 전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부·경찰 격) 정치국장의 숙청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재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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