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에는 10년쯤 전부터 '월드컵 징크스'라는 말이 떠돌았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있는 해에는 축구팬이 많은 남성 고시생은 시험에서 죽을 쑤고, 상대적으로 여성이 펄펄 난다는 얘기였다.

이는 통계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됐다. 여성의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비율은 2001년 17%였던 것이 한·일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에 24%로 쑥 올라갔다가, 2003년엔 20%로 떨어졌다. 독일월드컵이 있었던 2006년에도 여성 합격자가 2005년이나 2007년에 비해 높은 38%를 기록했고, 남아공월드컵이 있었던 2010년엔 여성 합격자가 42.1%나 됐다. 월드컵은 6월에 열린다. 사법시험의 1~3차 시험 가운데, 1차 합격자들만 치르는 2차 시험 기간과 겹친다.

이 같은 상관관계를 과학적 분석 방식을 입혀 논증한 논문이 나왔다. 서울대 박종희 교수(정치외교학)가 미국 워싱턴대 앤드루 마틴 교수와 함께 20일 발표한 '붉은악마가 한국 법조인의 다양성을 높여줬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박 교수는 "월드컵이 있었던 2006년, 2010년의 사시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통계적 오차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급증했다"고 논문에서 말했다.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여성이 갈수록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월드컵이 있던 해'의 여풍(女風)은 월드컵이라는 변수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월드컵이 있는 해와 직전 해의 사시 1차 합격자의 성비(性比)와 월드컵이 열린 해의 사시 2차 합격자의 성비를 비교하는 방식을 분석에 사용했다. 그 결과 2006년과 2010년엔 1차 합격자보다 2차 합격자의 여성 비율이 7%포인트 이상 높았다. 박 교수는 이런 '월드컵 효과'로 늘어난 사시 여성 합격자가 106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