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최근 애플과 구글이 특허 소송이나 매입에 들인 돈이 사상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을 초과했다고 보도했다. 혁신의 아이콘이던 두 회사가 특허 매입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선 '특허 전투력'이 혁신만큼이나 중요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시장이 처음 열렸을 당시 승승장구했던 대만의 기업들이 최근 급속하게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도 자체 특허가 부족해 로열티로 많은 비용이 나가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지난해 로열티 등 지식재산권 관련 산업이 2009년에 1800억달러(198조원)를 넘어섰고 2013년쯤에는 2000억달러(2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우리 기업들도 '특허 전투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닌 한국은 특허비용을 낮추는 것이 원가와 직결된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스마트폰에는 단말기당 최대 25만개의 특허가 집약돼 있어 특허 분쟁을 어떻게 피하느냐가 지상과제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특허 문제를 챙기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지금은 특허 전쟁 시대"라며 "기존 사업뿐 아니라 미래 사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특허는 투자 차원에서라도 미리 확보하라"고 독려했다. 그 결과 2005년 250여명 수준이던 IP(지식재산권)센터 인력은 지난해 말 45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미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10만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2006년 이후 6년 연속 미국 특허 등록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특허 사냥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인 CSR사 모바일 부문을 3억1000만달러(3410억)에 인수해 블루투스 등의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외환위기 이후 회사의 가장 큰 인수합병(M&A)이었다. 이 밖에도 7월엔 미국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와 스웨덴의 무선칩셋 개발업체 등 6~7개 업체를 한꺼번에 인수했다.
LG전자는 제품의 디자인 단계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을 기술진과 특허팀이 함께한다. 최근 야심작으로 내놓은 '옵티머스G'의 경우 1년 동안 특허팀이 달라붙어 수천건의 특허를 검토했다. 디자인도 외국계 로펌에 의뢰해 '독창성'을 인정받는 방식으로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
최근 LG전자 스마트폰 분야 실적 개선은 특허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미국계 투자은행은 LG전자를 LTE(4세대 이동통신) 핵심 특허가 가장 많은 업체로 꼽았다. 3G(3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 주춤했던 LG가 4세대에서 반격할 수 있는 것은 이 특허가 바탕이 됐다. LG전자 관계자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경쟁업체들에 비해 로열티 지급액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200여명 수준인 특허센터 인력을 2013년까지 30% 이상 더 늘릴 계획이다.
SK그룹 계열이 된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에 미국의 적자 반도체 회사를 2870억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가진 차세대 저장장치 특허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기아차에도 특허 전쟁은 남 일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스마트폰 이후의 특허 전쟁터로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꼽았다. 5만8000여건의 전자·소재·화학 분야의 특허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이브리드카 관련 특허의 67%를 일본 업체가 장악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는 일본의 특허를 피해 1000여건의 관련 특허를 내며 자체 하이브리드 엔진을 확보했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100여명 수준인 특허 인력을 250여명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5년쯤이면 자동차의 40% 이상이 전자장치로 채워지게 된다"며 "특허 전쟁에 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