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사세요. 가격요? 조금 비쌉니다. 1만원. 하지만 이 칫솔을 사시면 CD를 덤으로 드려요."
이달 초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린 포크 그룹 '신치림'의 콘서트 '퇴근길 오페라'에서는 음악극 형식의 공연 중반부쯤 이색적인 장면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하철 잡상인으로 분장하고 등장한 신치림의 막내 조정치가 지난 2월 발매된 자신들의 첫 앨범 '여행'을 칫솔에 끼워파는 자조적인 소극(笑劇)을 펼쳐보인 것이다. 이 칫솔과 CD는 실제로 객석에 앉은 청중에게 1만원에 판매되며 북새통을 이뤘는데 금·토·일요일 4회 공연 동안 600여장이 팔렸다. 공연 이전까지 이 앨범이 7000여장쯤 팔렸으니 3일 동안 9개월간 판매량의 10% 가까운 음반이 주인을 만난 셈이다.
칫솔의 힘이 문화적으로 이렇게 위대했던가? '신치림'은 실력과 개성을 갖춘 싱어송라이터 윤종신·하림·조정치가 결성한 밴드로 빼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아 왔다. 비록 과장 섞인 이벤트였지만 이 장면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존재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앨범의 처연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고소(苦笑)를 안겨줬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이와 아주 대조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새 앨범 '레드'를 발매한 직후 일주일 만에 120만8000장을 팔았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132만2000장을 기록한 힙합 스타 에미넘의 앨범 '디 에미넘 쇼' 이후 최다 판매 기록이다. 인터넷으로 음악이 유통되는 시대가 도래한 지 한참이지만 미국에서는 CD로 된 앨범을 사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음악 앨범은 뮤지션의 삶과 세계에 대한 철학을 집약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장 예술적인 매체다. 상업적 고려가 앞서는 노래와 음악적 고집을 담은 노래가 공존하기 때문에 뮤지션의 성장과 음악 시장의 다양화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미국·일본·유럽에서 아직도 앨범 시장이 거대하게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악 시장은 앨범을 버린 지 이미 오래다. 팬시 상품으로 기획된 아이돌 그룹의 앨범 몇 종을 제외하면 1만장만 팔아도 '대박'이란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 밑바닥에는 각종 인터넷 음악 사이트의 무리한 '정액제'가 있다. 월 3000원만 내면 무제한 스트리밍(실시간 듣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대중이 제값 내고 앨범을 사서 들으며 뮤지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기는 힘들다. 반면 음악 선진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어도 소비자가 제값을 치러야 하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예컨대 애플의 아이튠스 스토어에서는 노래는 한 곡당 1달러 안팎, 앨범은 한 장당 15달러 안팎을 지급해야 다운로드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다.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의 전 세계적 성공에 흥분하는 사이에 공짜나 다름없는 우리의 인터넷 음악 소비 환경은 앨범을 만들어 세상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뜻있는 뮤지션들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