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 조사에서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20개 차종 중 13개 차종의 공인 연비(燃費)가 실제보다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기아차는 EPA의 시정 권고를 받아들여 13개 차종의 연비를 갤런(3.78L)당 1~4마일(1.6~6.4㎞) 낮춰 표기하고, 해당 차를 산 90만명 전원에게 보상금을 평균 100달러 주기로 했다. 보상금 총액은 9070만달러, 990억원에 이른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의 연비 시험 절차상 규정 해석과 시험 환경·방법의 차이 때문"이라며 의도적으로 연비를 과장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미국 EPA가 10개 이상 차종에 대해 무더기로 연비 조정 권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소폭이기는 해도 연비가 과장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경쟁 업체들의 집중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현대·기아차의 평균 연비가 몇 년 새 크게 개선돼 2010년부터 업체별 순위 1위에 올라선 것과 관련해 경쟁 업체들의 이의 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에선 프랑스 정부가 현대·기아차의 덤핑 혐의를 제기하며 EU 집행위에 한국 자동차 수입 규제를 위한 '사전 동향 관찰'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가 이런 견제와 공격을 뚫고 나가려면 품질과 기술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현대·기아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위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소비자 전문 기관 컨슈머리포트가 10월 말 발표한 '신차 신뢰성 조사'에서 현대차는 작년보다 6단계 하락하며 17위에 그쳤다. 현대차는 시장조사 기관 JD파워의 2012년 신차 품질 조사에서도 18위로 7단계 떨어졌다.
일본 도요타는 2006년 세계 자동차 업계 1위에 올라섰다가 가속 페달 불량에 따른 대량 리콜 사태로 순식간에 위기를 맞았다. 현대·기아차도 이제 연간 생산 대수가 700만대를 훌쩍 넘는다. 그만큼 품질 관리가 훨씬 어려워졌고 업계 견제도 커졌다. 현대·기아차는 이제 양적(量的) 성장을 넘어 질적(質的)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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