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남기고 간 연락없는 휴대폰… 치매 아버지는 하루종일 꼭 쥐었다

입력 2012.11.02 03:08

[치매 환자 실종신고 급증, 올해만 5800여건… 경제난 등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기도]
'노인치매 전문' 서울 서북병원, 18개 병실에 치매환자만 86명
기초수급 대상자이거나 가족 있어도 부양 못 받아
"무작정 길거리 떠돌다 발견돼 병원 오는 무연고 환자들도…"

1일 오후 4시쯤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시립 서북병원 4층 치매 병동에서 병상에 누운 환자 권모(68)씨가 창문 쪽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 있었다. 뼈마디가 보일 만큼 앙상한 그의 손에는 이미 구형이 돼버린 지 오래인 폴더형 회색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간병인 윤모(59)씨는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지도 못하는데 할아버지는 자면서도 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했다.

이 휴대전화는 지난 8월 권씨의 딸이 서북병원에 권씨를 맡기면서 남긴 유일한 물건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다가 치매에 걸린 권씨를 딸은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곤 연락을 끊었다. "가족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휴대전화를 꼭 쥐었다. 휴대전화 기록에 남은 딸과의 마지막 통화는 지난 7월. 딱 45초였다. 간병인 윤씨는 "중증 치매에 당뇨까지 앓고 있고, 한 번 누우면 몸을 일으킬 수도 없을 만큼 병세가 심각하다"며 "딸이 자신을 병원에 맡겼다는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치매·폐결핵 전문 병원인 이곳 서북병원에는 현재 18개 병실에 치매 환자 86명이 입원해 있다. 이 중 권씨처럼 사실상 돌봐줄 가족이 없는 '외톨이' 환자만 12명에 이른다. 대부분 가족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들이다. 경찰 또는 구청의 '부랑 환자 의뢰서'나 서울역 노숙인 상담소의 인증(ID)을 발급받은 이도 있다. 병원 관계자는 "가끔 무작정 길거리를 떠돌다 발견돼 병원으로 오는 무연고 환자도 있다"며 "마땅한 보호자가 없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들에 대해선 진료·치료비 가 지원된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울 서북병원 54병동에서 입원한 치매 노인이 홀로 복도를 걷고 있다. 치매 노인이 거주하는 이 병동은 노인들이 무단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모두 잠그고, 복도도 계속 이어지도록 원통형으로 구성됐다. /이준헌 기자

실제로 치매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난 등을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고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데도 기초생활 지원금을 받으면서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경우도 많다. 서북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김모(64)씨도 그런 경우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의 한 단칸방에 혼자 살면서 수개월간 밥을 챙겨 먹지 못해 체중이 40㎏대까지 빠졌고, 영양실조로 쓰러진 뒤에야 경기도에 사는 친동생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처럼 병원이나 요양원에 맡기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길거리에 내다 버려지는 노인들도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성인을 내다버린 유기 범죄(유기 치상·치사 포함)가 올 들어 9월까지 36건이나 발생했다. 대부분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 실종 건수도 매년 늘고 있다. 2009년 5659건이었던 치매 환자 실종 신고는 2010년 6566건, 2011년 7607건으로 해마다 늘었고, 올해는 9월 현재 5820건이 접수됐다. 한국치매가족협회 관계자는 "전체 치매 환자 수가 늘면서 유기 및 실종 건수도 동시에 늘고 있다"며 "이렇게 버려진 치매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본인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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