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새로움을 좋아한다.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대선 재수생인 이회창 후보에 비해 신선했다. 2007년 대선 때도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 비해 '당인(黨人)'의 때가 덜 묻어 있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나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견주면 정치권의 새내기다. 문·안 두 후보가 내세우는 대선 프레임은 새 정치와 낡은 정치의 대결이다. 박 후보가 그간 과거사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림으로써 이 프레임은 더욱 강해졌다. 문·안 두 후보는 요즘 새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치 쇄신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 게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두 후보의 신선도는 떨어질 것이다.
정파 간의 연대나 연정(聯政)은 의원내각제에선 자연스러운 정치 행위다. 투표 결과 다수당이 없을 때 색깔이 엇비슷한 정당끼리 연대해서 의석 수에 따라 장관직을 나눠 갖는다. 투표 전에 연대하기도 한다. 2010년 스웨덴 중도우파 4개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며 공동 공약을 발표해 정권을 잡았다. 의원내각제의 연정은 후보 단일화도 필요 없고, 누가 사퇴할 필요도 없다. 각자 능력껏 의석 수를 얻어 그에 따라 정부 지분을 나눠 갖는다.
하지만 대통령제는 다르다. 투표 전 연대는 누군가 출마를 포기하는 후보 단일화를 뜻한다. 문제는 누군가 출마를 포기하면 그 사람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선택권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또 양보한 사람을 공동정부의 동반자로 대우한다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대통령제에서는 연정이 드물다. 다만 대통령제에서도 결선투표제가 있는 경우는 다르다. 프랑스에선 1차 투표가 끝난 뒤 3등 이하 후보들이 1·2위와 연대를 통해 지분을 나눠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결선투표를 하지 않는 대통령제다. 그런데도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은 결코 신선한 정치가 아니다. 3년 반 만에 파국을 맞은 DJP 연대, 투표 하루 전날 깨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그 증거 아닌가. 문·안 두 후보가 아무리 좋은 정치 쇄신안을 내놓고, 후보 단일화를 가치연합이나 연합정치로 포장하더라도 그것이 승률을 높이기 위한 편법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단일 후보를 여론조사로 정하는 것은 새 정치와 거리가 멀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여론조사 때 매출액 등 기준으로 랭킹 5위 안에 드는 회사들은 일을 맡지 않았다. 표면상 여러 이유를 내걸었지만 "여론조사는 추세를 파악하는 참고 자료일 뿐 투표를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당시 중소 규모의 2개 기관이 여론조사를 했는데,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각각 46.8%대42.2%, 38.8%대37%로 나왔다. 같은 날 똑같은 방법으로 한 조사도 이렇게 차이가 났다. 이번에도 설문을 박 후보와 맞설 경쟁력으로 할지, 야권 후보 적합도로 할지에 따라 조사 결과는 크게 차이 날 것이다. 똑같은 설문이라 하더라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또 두 사람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로 차이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0.1%포인트라도 많이 나온 후보가 승자라고 할 것인가.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뀐다'면서 대선에 뛰어든 안 후보 측이 오히려 단일화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럼에도 문·안 연대를 통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이가 상당수인 게 현실이다. 2002년 11월 25일 단일화 성공 다음 날, 노무현 후보는 "이번 대선은 새 정치와 낡은 정치의 대결"이라고 했다. 아마 이번 야권 단일 후보도 똑같은 얘기를 할 것이다.
입력 2012.11.0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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