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미 월넛힐 예술학교 작곡전공)군은 18번째 생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31일 현대음악의 거장인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 페테르 외트뵈시(68)는 서울시향을 지휘해서 한 곡을 연주했다. 바로 최군이 작곡한 첼로 협주곡이었다.

재혁군이 난생처음 써본 6분가량의 이 협주곡을 두 번 연주한 뒤, 외트뵈시는 "기술적으로 지도해야 할 부분은 있지만 재능은 정말 뛰어나다"고 격려했다. 재혁군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은 첫 도전이었는데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수줍어했다.

31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작곡가 진은숙(가운데)과 제자 최재혁(왼쪽)·김택수씨가 연습 도중 악보를 보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이날 열린 공개 리허설은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새로운 예술)' 가운데 젊은 작곡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무료 강좌다. 작곡가 진은숙은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부임한 이후,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마스터클래스를 해주고 서울시향의 연주로 리허설을 하거나 무대에서 작품 초연까지 해줬다. 작곡을 꿈꾸는 이들의 '대모(代母)'인 셈이다. 이날 현장 참관을 위해 내한한 영국의 명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제임스 윌리엄스 국장은 "젊은 작곡가들을 후원하고 격려한다는 점에서 모범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격찬했다.

진은숙은 지난해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현대음악 시리즈를 이끄는 예술감독에 임명된 데 이어, 유럽 최고 명문 음악제인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의 2014년 상주 작곡가로 선정됐다.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에도 그가 후배들을 위해 매년 두 차례씩 귀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살림이 넉넉지 않은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네 결혼식장에서 피아노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서울대 음대에도 삼수(三修) 끝에 합격했다.

진은숙은 '또 다른 진은숙'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가능한 한 많은 음악을 듣고 악보를 베껴 쓰는 것이 당시 유일한 음악 공부였다.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그 나이 즈음에 부러워하고 동경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는 현대음악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화학과 출신의 작곡가 김택수(32)씨도 2006년부터 마스터클래스에서 공부한 뒤, 올해 프랑스와 독일의 명문 현대음악 단체들의 연주로 잇따라 작품을 발표했다. 2007년부터 '아르스 노바' 강습을 받은 신동훈(29)씨 역시 2009년 스페인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실내악 연주회에서는 신씨의 신작인 '팝업(Pop Up)'이 연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