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행복이 화려한 예식서 오지 않음을, 살아본 부모는 알지않나"

    입력 : 2012.10.30 03:00 | 수정 : 2012.10.30 08:15

    [6부-<29> '섬진강 詩人' 김용택, 결혼의 의미와 사랑을 말하다]
    대학 땐 정의감 넘치던 청년들 부모에 떠밀려 결혼식 하면서 소중한 가치, 깡그리 잊게 돼
    결혼식은 '인생 학교' 입학식 서로 배우고 맞추고… 바꿔가야겠다는 의지가 '결혼'

    1986년 섬진강 시골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38세 노총각 교사가 14년 연하 신부를 아내로 맞았다.

    신랑은 전북 임실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시험에 붙어 선생님이 됐다. 신부는 전주 시내 양갓집 4남1녀 중 맏딸로 고생 모르고 자라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아가씨였다.

    "그때 집사람이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처가에서 반대가 어마어마했어요. 장인어른이 반대를 하시면서도'설마 우리 딸이 저런 촌놈하고 진짜로 결혼까지 할까' 하셨다는데, 설마가 사람을 잡은 것이여, 허허허!"

    29일 오전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서 만난 김용택(64) 시인은 부인 이은영(50)씨에게 장가가던 날을 떠올리면서 "그때는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것이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요즘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집도, 차도, 혼수도 다 갖추고 시작하려 들더라고. 결혼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려하게 식을 올리느냐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도 작은 결혼식 시킬 생각이고요. 제가 이제껏 수백 편 시를 썼지만 가장 아끼는 시는 안사람과 연애할 때 쓴 '참 좋은 당신'이에요."

    그는 26년 전에 쓴 시를 어제 쓴 시처럼 다시 외웠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중략)/생각만 해도/참/좋은/당신."

    그 시를 쓸 때 김 시인은 지금처럼 유명 시인이 아니라, 일찍 별세한 아버지 대신 다섯 동생을 거둬 먹이는 가장이었다. "마흔이 가까웠지만 결혼은 꿈도 못 꿀 처지였어요. 안사람은 셋째 동생 친구였는데, 내가 먼저 좋다고 한 게 아니라 우리 안사람이 먼저 내가 좋다고 자꾸 '결혼하자'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허허허."

    부부는 결혼 후 첫 6년을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에 살았다. 겨울마다 부인이 냇가에서 얼음을 깨서 빨래를 하고, 양동이에 물을 길어다 밥을 지었다. 그는 "결혼 전까지 나는 내가 외롭고 가난한 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안사람이 말 그대로 어두운 곳에 있는 나를 따뜻한 불가로 불러내 줬다"면서 "그게 너무 고마워 안사람이 '양말 뒤집어 벗지 말라'고 하자 바로 그 버릇을 고치고, '일어날 때 몸만 쏙 빠져나오지 말고 이부자리를 개라'고 하자 바로 그 버릇을 들였다"고 했다.

    29일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 있는 찻집에서 김용택 시인과 만나 결혼의 의미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김 시인은“결혼 생활이란 부부가 서로 배우고 고쳐나가는 학교와 같다”면서“처음부터‘조건’만 따져서 배우자를 만난 뒤, 고치지 않고 배움 없이 살겠다는 생각으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그는 문단에서 너그럽고 소탈한 사람으로 통한다. 하지만 결혼식에는 잘 가지 않는다. "주례 서달라"는 부탁도 한사코 사양한다. 그는 "진심으로 축하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결혼식에 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 아들(27·회사원)과 딸(25·대학생)을 결혼시킬 때도 임실 시골집 마당에 식구들만 20~30명 초대해 온종일 맛있는 음식 해먹고 이야기 나누는 잔칫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대학 다닐 때까지는 정의에 관심이 많은데, 결혼할 때가 되면 젊은이로서 가지고 있던 정의감과 진실함, 변화의 의지, 이런 좋은 가치들을 깡그리 버리고 말아요. 부모들의 기대에 맞춰, 사회의 조건에 맞춰 집은 이만큼, 예단은 이만큼, 결혼식은 어디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떠밀리듯 결혼하고, 부모들의 가치를 주입받은 어른이 됩니다. 부모들도 문제예요. 자식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려는 심리를 버려야 합니다."

    김 시인은 "결혼 생활이란 게, 살아보면 눈에 보이는 조건 같은 것은 다 사라지고 바뀌게 마련"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배우고 맞추고 바꿔가겠다는 의지죠.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나서 노력 없이 살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오히려 어려워지는 거지요. 행복한 결혼 생활은 화려한 결혼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들은 살아봐서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나요?"

    김 시인은 "저와 결혼했을 때 안사람은 스물네 살이었는데, 도대체 서른여덟 살이나 먹고 가진 것도 없는 나에게 왜 시집을 왔는지 궁금했지만 처음엔 어쩐지 미안해서 물어볼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한 10년 지나니 좀 덜 미안했지요. 그때쯤 돼서 넌지시 '왜 나랑 결혼했느냐'고 물어봤더니, 안사람이 '그냥 좋아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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