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기자

윤용로(57·사진) 외환은행장은 최근 장남(26·회사원)에게 전화로 "아버지가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 캠페인에 동참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저도 평소 자기 힘으로 결혼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는 장남의 대답에, 윤 행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견하구나. 이 대화, 아버지가 녹음하고 있는 건 알지?"

윤 행장은 25일 본지와 만나 "나중에 아이들이 딴소리 못하게 둘째아들(23·유학 중)과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도 저장해놨다"고 했다. 윤 행장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IBK기업은행장을 거치며 '잡월드' 등 청년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 사업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젊은이가 스스로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소신에서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작은 결혼식…' 캠페인에 흔쾌히 동참했다.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건, 우리 앞에 다가올 5~10년은 참 힘든 세월이 될 것 같습니다. 2%대 성장, 2%대 금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최근 10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호화 결혼식인데, 우리 사회가 반성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두 사람이 지나치게 물질을 과시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러자 여러 사람이 '나도 저 사람만큼 돈이 있는데 왜 나는 저 사람만큼 호사를 누리면 안 되는가'라는 심리에서 (호화 결혼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은 아니었던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예전엔 맥주만 마셔도 충분히 즐거웠는데, 어느 날 한두 사람이 "맥주는 싱겁다"며 값비싼 양주로 폭탄주를 돌리는 바람에 돈 버리고 몸이 상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결혼문화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저는 결혼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벌었건 돈 많으면 최고'라는 졸부 근성에서 과시적인 호화 결혼식이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허례허식보다 실질을 숭상하고, 진솔한 것을 추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지금처럼 힘 있는 혼주와 악수하려고 100m씩 줄 서는 결혼식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까요."

[[천자토론] '작은 결혼식' 올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