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워싱턴 특파원

"여러분은 내가 '이 메시지를 승인합니다'(I approve this message)라고 말하는 걸 보는 게 지겹겠지만 사실 나도 그렇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전당대회에 이어 최근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 같은 농담을 했다.

민주당의 모든 대선 TV 광고의 마지막에 "나는 버락 오바마입니다. 나는 이 메시지를 승인합니다"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웃음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야 웃기려고 한 얘기겠지만 요즘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 TV를 켜면 짜증이 날 정도로 대선 광고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살고 있는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도 초접전 양상의 '스윙스테이트'(경합주)이다 보니 조금 과장하면 오바마 광고 나온 뒤 하나 건너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 광고가 나오고, 다시 두 개 건너 오바마 광고가 나오는 식이다. 처음에는 양 후보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고, 한국의 선거 광고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비교하며 주의 깊게 보곤 했지만 곧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두 후보가 선거 막판에 더 집중적인 광고를 내보낸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11월 6일 선거 때까지 TV 광고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에서 이 같은 광고 물량 공세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돈이다. 두 후보는 지금까지 역대 선거 사상 최고인 20억달러의 후원금을 모았고, 이 중 절반가량을 TV 광고에 쏟아부었다. 1년여간의 선거 레이스를 벌이면서 광고비만 1조원이 넘는 것이니 이런 '돈 잔치'가 없다. 버지니아주에만 지금까지 9600만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미국에 와서 미국 정치판을 2년여째 들여다보고 있지만 아직도 너무나 노골적이면서도 당연하게 돈을 내세우는 이들의 문화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바마나 롬니의 공식 홈페이지는 모두 첫 화면이 '후원금 기부' 안내다. 15달러부터 5000달러까지 액수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마다 '얼마 낼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듯하다. 또 이들의 이메일 리스트에 등록하면 시도 때도 없이 후원금을 요구하는 메일이 독촉장처럼 날아온다. 이메일 내용도 '지금 아슬아슬한 상황인데 당신이 보태는 돈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매우 긴박하다.

두 후보 캠프는 매달 이렇게 모은 후원금 액수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공화당의 한 선거 캠프 관계자에게 "후원금 액수를 꼭 그렇게 자랑해야 하나"고 묻자 그는 "후원금 액수는 곧 후보의 경쟁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지표이고, 이는 다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물론 미국 선거판의 이런 돈 문화는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의 철저한 감독이라는 보완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투명하다고 해도 선거 한 번에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돈을 퍼붓고 또 이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게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향일까. 마치 쇠퇴하는 제국(帝國)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