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 '결정적 시기'가 뇌를 만든다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0.22 23:30 | 수정 2013.03.05 11:53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우리가 독일인이라 그런 게 절대 아니고, 시장경제와 사회복지가 적절히 혼합된 독일이 가장 살기 좋은 곳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 비슷한 주제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했을 땐 "자유로운 미국 사회가 가장 좋지 않으냐?"라고 했다. 궁금해져 일본·한국 친구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역시 "안전하고 깨끗한 일본이 최고" "정 많고 끈끈한 한국이 가장 좋지"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다들 자신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왜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타국에서 살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걸까? 그 이유는 뇌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 뇌는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시냅스'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지능·감성·기억 등 모든 것은 이 100조개의 시냅스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 많은 시냅스의 모든 위치와 구조를 유전적으로 똑같이 물려받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뇌 발달엔 주변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비슷한 숫자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간의 연결성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마치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큰 길은 유전적으로 타고나지만, 막상 부산에 도착하면 신경세포는 주변 세포와 무차별로 연결되어 있다. 이 중 적절한 시냅스도 있고,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시냅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적 시기'라는 걸 가지고 있다. 오리는 태어난 지 몇 시간, 고양이는 4주에서 8주, 원숭이는 1년, 그리고 인간은 약 10년까지 유지되는 이 결정적 시기에 자주 사용되는 시냅스는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는 사라진다.

갓 태어난 오리의‘결정적 시기’에 어미 역할을 해 오리들이 평생 자신을 따르도록 한 콘라드 로렌즈 교수.
갓 태어난 오리의‘결정적 시기’에 어미 역할을 해 오리들이 평생 자신을 따르도록 한 콘라드 로렌즈 교수.

결정적 시기의 뇌는 젖은 찰흙같이 주변 환경을 통해 주물러지고, 모양이 바뀔 수 있다. 그 시기가 끝나면 찰흙은 굳어지고 유연성을 잃는다. 그래서 한국 아이가 스웨덴에서 자라면 완벽한 스웨덴어, 러시아 아이가 한국에서 자라면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유연하지 않은 시냅스로 가득 찬 어른의 뇌로 외국어를 배우기란 정말 괴롭다. 뇌는 덜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 경험한 주변 상황에 최적화되도록 완성된다. 고향이 편한 건 어릴 적에 경험한 음식·소리·풍경·얼굴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최적화되어 있으면 편하다. 선택이 필요 없고 막연히 좋다. 거꾸로 다른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전혀 당연하거나 편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내 것이 좋기 때문에 남의 것이 나쁘다"가 아니고, "내 것이 나에게 좋은 만큼 다른 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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