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서로 눈치 보다가 결국 무리하게 되는 예물 중 하나가 예비 시어머니와 예비 신부가 주고받는 패물이다. 상대의 취향을 모른 채 '가격대'를 기준으로 선택하다 보니, 큰돈 들여 주고받고도 신혼 초에만 몇 번 하고 수십년간 옷장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귀금속중앙회가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는 서민들까지 불필요하게 호화로운 혼수와 예물을 준비하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면서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단체로 동참했다. 한국귀금속중앙회는 고급 보석상부터 동네 금은방까지 전국 1만2000여개 귀금속 판매업체로 구성된 업계 최대 단체다. 웨딩산업의 한 축을 맡은 거대한 단체가 '결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자발적으로 동참해온 것이다.

한국귀금속중앙회 관계자는 "지난 12일 열린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선일보 기사 봤느냐?' '정말 맞는 얘기다. 우리도 동참하자'는 얘기가 나와 협회 차원에서 참여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귀금속중앙회는 '작은 결혼식을 권합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제작해 캠페인 취지에 적극 공감하는 회원사에 보급하기로 했다. 동시에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결혼 예물을 구입할 때 가능하면 이 스티커가 붙은 업체를 이용하시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일반 소비자가 스티커가 붙은 업체에 가면, 업체 직원이 고객의 예산과 취향에 맞춰 되도록 간소한 예물을 권하고 "예물이건 예식이건, 호화로운 것보다 의미가 있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설명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 결혼 예물 마련할 분들은 ‘작은 결혼식을 권합니다’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은 업체를 이용하세요.” 21일 한국귀금속중앙회 임원들이 웨딩업계 최초로 본지와 여성가족부의 작은 결혼식 캠페인에 동참했다. 왼쪽부터 신현욱 감사·정재호 회장·송근석 이사·김한복 부회장·이건주 전무·박효락 이사·정성정 전 회장·윤웅섭 부회장.

과거에 비해 결혼 예물이 많이 간소해졌지만, 대다수 서민에게 아직도 금은방은 문턱이 높다. 가격이 비싸 평소 자주 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부담도 크다. 예비 시어머니와 예비 며느리가 "체면보다 실속이 중요하다"고 뜻을 모으는 가정도 있지만, "남들은 얼마짜리 무슨 패물을 받았다"고 상대를 압박하는 가정도 많다.

정재호(61) 한국귀금속중앙회장은 "취업난이 심해지고 신혼집 전세값이 올라가면서 결혼 비용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젊은이가 많아졌다"며 "체면과 허영 때문에 부모 돈으로 분에 넘치는 호화 예물을 마련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못 된다"고 했다.

정 회장은 "부모가 번 돈으로 자기 신부 손에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주는 신랑보다 자기 힘으로 간소한 예물을 주고받은 뒤, 나중에 결혼한 지 10년, 20년 됐을 때 스스로 노력한 결과를 모아 아내 손에 깨알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주는 신랑이 진짜 멋진 남자"라고 했다.

이와 함께 한국귀금속중앙회는 임원부터 솔선수범해서 자식들을 조촐하게 결혼시키기로 했다. 정 회장을 포함해 회장단과 전국 지부 지회장 등 임원 40여명이 "내 자식부터 작은 결혼식을 시키겠다"고 서명했다. 한국귀금속중앙회는 또 스티커에 적힌 약속이 공언(空言)에 그치지 않도록 스티커에 중앙회 전화번호를 병기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작은 결혼식을 권합니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업체에 갔는데 값비싼 패물을 강권하더라"고 전화해오면, 중앙회 차원에서 사실인지 확인해 스티커를 회수하고 소비자에게 사과할 방침이다.

☞한국귀금속중앙회는…
업계 最大·最古단체, IMF '금 모으기' 땐 金 감정 무료봉사도

1966년 귀금속 판매 업체 권익 증진을 위해 설립된 업계 최대·최고(最古) 단체다. 전국적으로 6개 지부와 88개 지회가 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진 뒤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을 때, 한국귀금속중앙회가 나서서 감정사 134명을 전국 은행에 파견해 국민이 보낸 금을 감정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무보수로 맡아 했다.

정재호 한국귀금속중앙회장은 "무리해서 값비싼 예물을 마련한 뒤 평소에 착용하지 못하는 것보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자기 힘으로 간소하고도 뜻이 담긴 예물을 마련하는 것이 의미 있다"면서 "맞춤 양복 시대가 가고 기성 양복 시대가 왔듯이, 간소하면서도 디자인이 뛰어난 예물이 생활화되는 것이 국민 부담도 줄이고 국내 귀금속 산업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참여하려면 이메일 또는 전화를 통해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약속 증서를 보내드립니다.

▲메일 보낼곳: life21@life21.or.kr ▲문의: (02)793-7816

[[천자토론] '작은 결혼식' 올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