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

'바꾸려고/ 애쓰지마// 다를거라/기대도마'('프로필 사진')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돼'('애니팡')

이 문장들은 '시(詩)'다. '민간인' 하상욱(31·사진)씨가 출간한 전자책 '하상욱 단편시집―서울시'에 수록된 15편 중 일부다. 스마트 기기에서 출판사의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읽을 수 있고, 값도 무료다. 시를 시집으로 묶어 내는 유통 과정을 파괴했고, 시가 다뤄야 할 소재의 '심리적 금기선'도 깼다.

하씨의 시는 매우 단순하다. 길어야 네 줄, 25자를 넘지 않는다. 짧고 간결한 내용에 담긴 촌철살인 메시지가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의 주제도 바로 곁 일상에서 잡아올린다. '넌,/ 필요할 땐 내 곁에 없어// 넌,/ 바쁠 때만 날 괴롭히지'('잠'), '바빴다는 건/ 이유였을까/ 핑계였을까'('헬스장') 식이다.

하씨의 직장은 전자책 유통 업체. 대학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글쓰기 수업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난 9월 28일 하씨의 전자책이 출시된 후, 다운로드 건수는 21일 현재 4만 건에 이른다. 하씨의 트위터 팔로어는 1300명을 넘어섰고, 무엇보다 그의 시는 메신저로, 카카오톡으로 부지런히 유통되고 있다.

이런 시에 대한 반응은 당연히 극단적으로 나뉜다. "맞아 맞아! 내 얘기" "하이쿠 같다"는 이들과 "시가 아니라, 광고 카피 같다"는 반응이 있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하씨의 글은 SNS나 문자,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에 분량상 지장이 없고, 읽는 데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고, 쓱 보고 씩 웃으면 그만"이라며 "'시집'이라고 못박아 내놓은 것 자체가 일반 독자들에겐 일종의 유쾌한 퍼포먼스"라고 했다.

일본 전통 단시(短詩) '하이쿠'를 연상시킨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문학 관계자들은 "하이쿠는 3구 17자 안에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다. 단지 '짧다'는 이유만으로 유서 깊은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 전자책으로 내봤다"는 하씨는 전화 통화에서 "내 글은 시의 고정관념을 패러디한 B급 감성"이라고 했다. 그는 또 "긴 글은 안 쓴다. 어지럽다. 샤워할 때 순간 딱 떠오르는 생각을 쓴다"고 했다. 시집에는 하씨 여자친구의 추천사도 수록돼 있다. '이 책이 무료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어쩌면, 그의 시가 대접받는 세상에 대해 화가 나는 사람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