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를 향해 "내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테니 민주당에 입당하라"고 요구하자 "정치 쇄신이 먼저"라고 주장해온 안 후보는 "진짜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잘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받았다. 문 후보 측은 또 조국 서울대 교수가 문·안 후보 양측에 '정치혁신위원회 공동 구성→공동 정강정책 확립→세력 관계 조율'을 골자로 한 3단계 후보 단일화 방안을 내놓자 즉각 "받아들이겠다. 조 교수를 정치혁신위원장으로 하자"고 제의했으나 안 후보 측은 "정당 쇄신은 민주당이 할 일이고 조 교수는 문 후보 쪽 사람 아니냐"며 퇴짜를 놓았다.

대선 후보 간 단일화는 직선제 개헌 직후 치른 1987년 13대 대선 이래 선거 때마다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13대 대선 때 실패로 끝난 양김(兩金) 단일화와 15대 때 성사된 김대중·김종필 단일화, 16대 때 성사됐다가 대선일 전날 깨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대표적이다.

이번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종잡기 힘들다. 지금까지 두 후보는 누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맞설 적임자인가를 둘러싸고 기세 싸움을 벌여왔다. 안 후보는 단일화를 논의할 전제 조건으로 '정치 쇄신'을 내세웠으나 정치 쇄신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건지 밝히지 않고 있다. 두 후보가 어떤 기준에 따라 단일 후보를 결정하고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집권할 경우 국정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는 더더욱 알려진 것이 없다.

대선 때마다 이념과 정책 문제를 뒷전으로 밀쳐놓고 후보 단일화가 선거의 모든 것인 양 매달리는 것은 후보 단일화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 야권도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지면 대선은 이긴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오로지 단일화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끌고 가는 건 정당정치의 근본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선 때까지 유지된 유일한 성공 사례인 김대중·김종필 단일화도 집권 후엔 단일화 핵심 조건인 내각제 개헌이 무산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 길을 달리했다. 결국 두 사람은 자기들에게 표를 모아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셈이다. 문·안 후보는 단일화를 하려면 양측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나서 국정 운영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내놓고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제3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는 건 기성 정치권이 국민 여론을 제대로 다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각제 국가에선 총선 후 단독 과반 정당이 없을 경우 제1당이 소수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해 정권을 안정시키면서 국정에 반영되지 않은 여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정치권은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이유로 제3·제4 후보들을 사퇴시켜 자기편으로 만드는 '정치공학(工學)'에만 골몰하지 말고 소수 정파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정치에 반영할 통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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