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는 “50점”이라고 했지만 너무 박한 점수일지도 모른다. 이대호(30·오릭스 버팔로스)의 일본무대 데뷔 시즌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여러 기록에서 잘 드러나는 명제다.
일본에서 첫 시즌을 보낸 이대호는 지난 10일 귀국했다. 좋은 성적과 함께 돌아온 이대호이기에 기분을 낼 법도 했지만 냉정했다. 이대호는 “올 시즌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이다. 많은 기대를 받고 갔기에 올 시즌 정도의 성적은 당연히 내야하는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에는 나도 모르게 공을 놓치고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성적표는 화려하다. ‘투고타저’의 전성시대인 일본프로야구에서 타율 2할8푼6리(리그 10위), 150안타(5위), 24홈런(공동 2위), 91타점(1위), 출루율 3할6푼8리(4위), 장타율 4할7푼8리(2위)를 기록했다.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지표에서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전천후로 활약한 선수는 흔하지 않다. 센트럴리그의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가 이대호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였다.
특히 이대호에게 개인타이틀을 안겨준 타점을 주목할 만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90타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아베(104타점)와 이대호 뿐이다. “홈런보다는 타점을 많이 만들겠다”라던 시즌 전 목표를 이뤘다.
팀에서 차지하는 타점 비중은 양대 리그를 통틀어 제일이었다. 이대호는 올 시즌 팀 득점(443점) 중 91점을 자신의 손으로 책임졌다. 단순 계산으로 20.4%였다. 팀 전체 타점인 424점으로 계산하면 21.5%다. 이대호처럼 팀 전체 득점의 20% 이상을 홀로 책임진 선수는 양대 리그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104타점을 올린 아베가 19.5%로 이대호의 뒤를 따랐다. 이 역시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워낙 이대호의 비율이 높다. 요코하마의 알렉스 라미레즈가 18%로 뒤를 따랐다. 한편 퍼시픽리그에서는 이대호를 제외하면 17%가 넘는 선수조차 없었다. 장타율 1위 윌리 모 페냐(소프트뱅크)가 16.8%였고 퍼시픽리그 홈런왕 나카무라 다케야(세이부)가 15.3%, 니혼햄의 거포 나카타 쇼가 15.1%를 기록했다.
타점은 자신의 능력은 물론 동료들의 적절한 지원도 필요하다. 주자가 없으면 타점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대호의 성적은 올 시즌 팀 타율이 2할4푼1리로 리그 최하위였던 오릭스에서 나온 기록이라 값어치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팀을 꼴찌에서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대호 자신의 성적만 놓고 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치다. “첫 해에 투수들을 많이 봤기에 내년은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라고 한 이대호의 각오에 더 큰 기대가 걸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