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 뇌가 달라지면 사람도 바뀐다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0.08 23:30 | 수정 2013.03.05 11:53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골프 약속이 잡혔다면 타이거 우즈의 골프 스윙 동작을 뇌로 다운로드받는다. 화성에서는 '아바타' 로봇이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 할리우드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뇌과학자들은 이미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을 선보였다. 소비자의 뇌를 분석하는 신경경제학도 탄생했다.

    뇌과학은 인류에게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될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까.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김대식 KAIST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가 그 답을 제시한다. MRI를 이용한 뇌 연구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독일 다름슈타트공대를 나와 막스 플랑크 뇌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네소타 의대·보스턴 의대 교수를 거쳐 2009년 KAIST에 부임했다.

    1848년 미국 버몬트주의 철도공사장에 일하던 피네아스 게이지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폭발물 사고로 긴 철봉이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게이지는 다행스럽게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사고 전에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일꾼이었던 그의 성격이 180도 바뀐 것이다. 더 이상 성실하지도 않고, 포악하고 일에는 관심이 없어진 게이지를 만난 친구들이 "우리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달라졌다.

    도대체 게이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의 머리를 뚫은 철봉은 전두엽이라고 불리는 뇌의 앞부분을 관통했다. 전두엽은 현대 뇌과학에선 사람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알려져 있다. 뇌과학은 우리 모두 전두엽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망가질 경우 성격이 180도 변화해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자기 머리를 관통했던 철봉을 들고 있는 피네아스 게이지(왼쪽). 뇌 영상 기술을 통해 철봉이 게이지의 전두엽을 관통한 것을 알 수 있다.

    몇년 전 미국 보스턴 지역 뇌과학자와 법조계 인사들의 모임에서 한 판사가 어느 기업의 임원이 부인을 살해한 사건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사건 전까지 그 임원은 한 번도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왜 갑자기 부인을 살해했을까? 재판 당시 그 임원의 변호사는 그의 전두엽에 암(癌)이 생겼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두엽이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므로 그 살인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망가진 전두엽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미법(英美法)은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행동하므로 자신의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치지, 어디에도 "신경세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었다. 보스턴 모임 당시 뇌과학자들은 게이지 사건을 들먹이며 반박했지만, 판사의 답변에 이내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판사도 전두엽에 대한 연구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법원이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뺑소니 사고를 내고는 "아, 제 신경세포 4597번이 잘못 작동한 것 같네요", 성폭행을 하고는 "죄송합니다, 한순간 감성을 좌우하는 제 뇌 영역의 통제가 안 됐나 보네요"라며 책임을 회피할 것이란 말이다. 그 판사는 "뇌과학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책임이 없는 사회'를 뇌과학자들이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아무리 비과학적이라도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다'는 착시(錯視)를 믿으며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현대 뇌과학이 제시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니 상당히 추(醜)하고 어이없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뇌의 모습이 현실이고, 우리는 그런 뇌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브레인 스토리'에선 앞으로 이런 인간의 본 모습을 소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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