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4시, 충북 옥천군 안내면의 한 개인주택 앞마당. 가을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마당 앞에선 금강의 물결이 찰랑거렸다. 잔디밭 한편에 아담한 단상이 세워지고, 하얀 의자 100개가 들어섰다. 이 집에선 신랑 손재황(29)씨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가족이 산다. 15년 전 '전쟁이 나도 염려 없는 안전하고 외진 곳'을 원하는 할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손씨의 아버지 삼형제가 돈을 모아 터를 마련했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산기슭이었다. 이 땅에서 손씨 할아버지가 8년간 농사를 짓다가 집을 지었다.
하객은 친지 등 130여명. 손씨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결혼식을 하게 돼 너무 뜻깊고 기쁘다"고 했다.
신부 배애리(29)씨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 직전 리허설을 했다. 배씨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미국 드레스 전문 쇼핑몰에서 온라인으로 180달러(약 20만원)에 구입한 것이다. 베일·화관·신발 가격까지 합쳐도 30만원이 들지 않았다. 신부 화장과 올림머리도 전문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솜씨 좋은 친구가 맡았다. 신부의 친구들은 "명품 드레스랑 차이가 없다" "나는 결혼할 때 메이크업 비용만 70만원이 들었는데… 네가 더 예쁘다"며 웃었다.
신랑·신부가 입장하자 신부의 사촌 언니가 촬영을 시작했다. 부부는 예단과 예물을 모두 생략했다. 반지 교환 때 손씨는 과거 배씨에게 프러포즈를 하면서 줬던 화이트골드 반지를 신부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주례는 신랑·신부를 학창 시절부터 알아온 목사가 섰고, 혼주들의 덕담을 듣는 순서도 이어졌다. 식이 끝나가자 신랑의 큰아버지 부부가 나서 색소폰으로 축하 연주를 했고, 신랑 친구가 축가를 불렀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자리를 떠난 하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피로연도 마당에서 진행했다. 하객들은 모두 저녁 9시가 될 때까지 남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치른 결혼식에 든 비용은 총 1400여만원. 하객들은 축의금 대신 덕담을 적은 카드를 남겼다. 신랑 아버지인 밸런스치과(서울 강남구) 손인범(55) 원장은 "결혼식장에 가면 '내가 여기 왜 와있나' 하는 하객을 하도 많이 봐서, 억지로 참석하는 결혼식은 지양하고 싶었다"면서 "아버지가 사시는 곳에 마당이 있어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모여 (아들의 결혼을)축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좋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