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배기 딸을 둔 직장인 정모(31)씨는 최근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집에서 IPTV(인터넷TV)로 봤다. 극장 상영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작이라 시청료는 다른 영화의 평균 수준(4000원)을 웃도는 1만원이었다. 정씨는 "아기 때문에 극장에 갈 수 없어 영화는 주로 IPTV로 본다"며 "가족이 함께 볼 수 있고, 최근에는 극장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도 많아져 더 자주 이용하게 된다"고 했다.
◇인터넷 때문에 망했다가 인터넷 덕에 부활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궤멸상태에 빠졌던 한국 영화산업의 부가판권시장(DVD·다운로드 등 극장 상영 이외의 방식으로 판매하고 소비하는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888억원이던 국내 영화 부가판권시장 규모는 2010년 1109억원, 지난해 1709억원으로 급성장했다. 2년 만에 2배 정도로 커진 것.
영화 부가판권 시장의 '부활'을 이끄는 힘은 인터넷이다. 우선 TV VOD(주문형 비디오) 매출이 2009년 262억원에서 지난해 910억원으로 2년 만에 3.5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에서는 "TV VOD 시장에는 디지털케이블TV(영화·드라마 등을 원하는 시간에 시청할 수 있는 고화질 TV)도 포함되지만, 최근 성장세는 가입자 5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IPTV가 큰 힘이 되었다"며 "올해는 스마트TV(인터넷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TV)까지 가세해 작년보다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인터넷 합법 다운로드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영화를 보는 인터넷 VOD 매출도 같은 기간 262억원에서 440억원으로 늘었다. 무선인터넷 기능을 활용한 스마트폰 영화 매출도 작년 한 해 61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기존 동영상 저장수단인 DVD 등의 매출은 403억원에서 298억원으로 줄었다. 김현정 영화진흥위원회 과장은 "불법 다운로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인터넷과 대형화면 TV가 결합하고 인터넷 합법 다운로드가 자리 잡으면서 부가판권시장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영화 부가판권시장이 부상하자 극장 상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IPTV 등에 출시되는 영화가 늘고 있다. '건축학개론' '은교' 등이 극장 상영이 종료되기 전 TV VOD로 출시됐다. '577 프로젝트' '차가운 열대어' 등은 극장 스크린을 많이 확보하지 못하자 극장과 TV VOD 동시개봉 전략을 세웠다.
◇한국영화 강세
지난해 TV VOD 시장에서는 영화 '써니'(75만1320건)를 비롯, '아저씨'(54만4221건), '최종병기 활'(47만2105건) 등 한국영화가 상위 10위를 차지했다. 외화 중에는 '트랜스포머3'(26만4531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24만2690건)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영화진흥위원회)
한 배급사 관계자는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대작 외화보다는 TV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한국영화가 더 인기"라며 "올해도 '완득이' '도가니' '범죄와의 전쟁' 등 한국영화 흥행작들이 TV VOD 시장에서만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야한 영화'의 경우 극장보다 TV VOD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배우 김혜선의 노출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완벽한 파트너'는 IPTV를 통해 극장 수입의 3~4배 정도를 더 벌어들였다. 2010년 개봉했던 '방자전'은 지난해 IPTV에서만 34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