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은 축복의 시간이었죠… 이젠 목소리 기부하며 살거예요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입력 2012.09.26 03:06 | 수정 2012.09.26 21:02

    '감기 조심하세요'의 성우 장유진, 22년 교통방송 DJ 마감
    다른 방송까지 합치면 28년… 남편 장례 때 빼곤 개근했죠
    청취자가 '얼굴 보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오기도 했어요

    22년간의 교통방송 DJ 생활을 끝낸 장유진이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앞에서 미소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오랫동안 내 목소리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매일 새벽 여러분과 함께한 긴 세월 동안 추억도 제 나이테만큼 켜켜이 쌓여 있는데요. 이제는 정말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끝 곡은 유재하의 '지난날'입니다." 지난 17일 새벽 2시 53분. 교통방송(TBS) FM '장유진의 음악편지'의 DJ 장유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1년간 진행해 온 이 프로그램의 DJ석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앞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한 시간까지 합치면 22년 동안의 교통방송 DJ 일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 만난 그는 "라디오는 내게 축복이고 행복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마지막 방송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입을 열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작가·PD들이 다 모여들어 DJ석에 도열해 있더라고. 끝난 뒤 한 명씩 꼭 안아줄 때 끝났다는 게 실감 나더라고요."

    애청자들의 소소한 사연과 짧은 단상을 잔잔한 1980~90년대 가요들과 곁들여주는 '음악편지'는 택시기사·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밤 시간에 일하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신청곡과 사연을 보내는 게 일반화했지만, 그는 날마다 우편엽서 주소를 또박또박 불러주는 아날로그 스타일을 고수했다.

    "실연해서 힘들다는 사연을 보내온 젊은이에게 '먼저 손 내미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충고했더니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며 고맙다는 후속 사연을 받은 적도 있어요. 특히 병원에서 밤 근무하는 간호사들과 환자들로부터 '음악편지 들으며 힘을 얻는다'는 인사를 많이 받은 게 기억에 남아요."

    좀처럼 나이를 밝히지 않는 장유진은 지난 40여년간 성우로 활동하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비비안 리, 메릴 스트리프 등의 영화 더빙, '감기 조심하세요'로 유명한 약 광고 멘트, 만화 캐릭터 '똘똘이 스머프' 목소리 등으로 국민에게 친숙한 주인공. 한편으론 1980~90년대 FM 음악프로그램의 황금기를 이끈 '라디오 스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DJ를 처음 맡은 게 1984년이니 28년 동안 라디오를 지켰네요. 한때는 쏟아지는 애청자 엽서를 정리하느라 제작진이 진땀을 흘렸고, 일부 열성 청취자가 '얼굴 보고 싶다'며 방송국으로 무작정 찾아오는 일까지 있었어요(웃음)." 그는 "군 복무 시절 내 프로그램의 팬이었다는 한 '예비역 청취자'의 사연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고 했다.

    "96년 남편(연극인·前 실험극장 대표 김동훈) 장례 때 일주일 쉰 걸 빼곤 줄곧 개근했죠. 그런데 이 일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1~2년 전부터 고민했죠. 언제 그만둬야 가장 아름다울까? 어떻게 해야 아름답게 마무리될까? 그 고민이 잘 해결된 것 같아요." 그는 어렴풋이 세워둔 '재능기부' 계획도 살짝 공개했다. "우선 방송 때문에 좀처럼 가지 못했던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 시각장애인을 위한 드라마 내레이션 같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할 겁니다. 내 목소리로 남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감, 정말 말로 표현 못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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