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인 늠름한 신랑과 아름다운 신부에게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있자 잔디밭 뒤쪽에서 손을 맞잡고 있던 신랑과 신부가 천천히 결혼 단상 앞으로 걸어왔다.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에 둘러앉은 양가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 180여명이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축복했다.
22일 오후 4시, 북한산 입구에 자리한 야외카페 '투데이스'에서 '작은 결혼식'이 열렸다. 같은 회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온 여춘구(29)씨와 최나다(28)씨가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검소하고 아름다운 예식 장소를 제공하는 '100쌍 캠페인' 대상으로 선정돼 한 쌍의 부부로서 새 인생을 출발했다.
주례 대신 신부 아버지 최진섭(59)씨가 딸과 사위의 결혼을 증명하는 '성혼 선언문'을 낭독한 뒤 하객들에게 말했다. "저도 신랑·신부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저희와 꼭 함께 해주시길 바라던 아주 특별한 분들입니다. 거창한 결혼식도 좋겠지만 진정으로 두 사람을 아껴주시는 분들만 모인 작은 결혼식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신랑·신부가 둘이 함께 고른 작은 목걸이를 어머니들의 목에 걸어주면서 "키워주셔서 감사드린다.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편지를 읽었다.
이어진 피로연은 영화 속 작은 축제 같았다. 신랑·신부가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각자의 애창곡인 김동률의 '아이처럼'과 이소은의 '키친'을 불렀다. 신부가 노래할 때 신랑이 춤을 추자, 하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하객들은 잔디밭을 자유롭게 거닐며 신랑·신부를 축복하고 덕담을 했다.
신랑 여씨는 "평소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필요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신부와 머리를 맞대고 식순과 프로그램을 직접 짰는데, 그 과정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신부 최씨는 "갔다 와서 음식이 뭐 나왔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 그런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했다.
180여명이 마음껏 먹고 즐겼는데도 이날 결혼식 비용은 음식·장소 임대료·예복 임대료까지 다 합쳐서 500만원이었다. 두 사람은 경기도 이천에 1억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하고 세간살이 구하는 비용도 전부 스스로 해결했다. 백금 커플링 하나씩 나눠 끼고, 예물·예단은 모두 생략했다. 청첩장도 손수 써서, 꼭 왔으면 하는 사람들에게만 보냈다. 양가 부모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가정을 꾸리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