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현우의 커튼 콜] 삼선교 과학 선생님, 한국 프라모델의 전설로… 아카데미과학 김순환 회장

    입력 : 2012.09.22 03:19

    무선조종 비행기 제작 취미서 창업으로… 교사 시절 청계천 고물상서 부품 사다 모형 조립해 남의 점포에 진열해 팔아, 주위 반대 무릅쓰고 500만원으로 시작
    처음엔 외국 만화책 보고 설계, 대부분 군사무기라 접근이 쉽지 않아 줄자 들고가 전투기 길이 재기도 해… 최고 히트상품은 타이타닉, 50만개 팔았죠
    요즘엔 서바이벌게임용 총이 인기예요… 1980년대 컴퓨터 게임 인기 끌며 위기 수출로 눈돌려 극복… 이젠 60國에 수출, 작년 매출 540억… 가업으로 이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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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플라스틱 모형 만들기가 취미였던 김순환 회장은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1969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때 프라모델 회사가 100곳이 넘을 만큼 경쟁이 심했지만, 실물과 얼마나 비슷한가를 두고 오로지 품질 향상에 몰두해 온 아카데미과학만이 세계적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채승우 기자
    '아카데미과학'은 1970~80년대 한국의 아이콘 중 하나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이 점포에는 길가 쪽으로 세워둔 진열장에 비행기와 탱크, 군함들이 가득했고, 그것들을 보며 군침 흘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플라스틱 부품들을 직접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이 장난감은 '프라모델'이라고 불렸는데, '플라스틱 모델'이란 뜻이었다.

    1980년대 전자오락 열풍과 90년대 PC의 보급, 2000년대의 인터넷 게임, 그리고 스마트폰 시대인 현재까지도 아카데미과학은 꾸준히 새로운 프라모델을 만들어 내놓고 있다. 내수 위주였던 시장에서 수출로 눈을 돌리고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니라 성인들의 취미 산업으로 탈바꿈해온 결과다. 현재 이 회사는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 내에 있다. 150명이 근무하는 본사 외에 필리핀에 직원 300명 규모의 공장이 있고, 독일에도 판매법인을 두고 있다.

    작년 한 해 540억원 매출을 기록한 이 회사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순환(78) 회장이 1969년 서울 돈암동 집 마당에서 시작했다.

    올해 입사 32년차인 구제현(60)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만, 김 회장은 여전히 매일 회사에 출근해 생산 공정 곳곳을 직접 돌아보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인화단결·기술혁신·품질향상'이라고 쓰인 사훈(社訓)이 걸려 있었다.

    ―프라모델이 여전히 인기 있습니까.

    "예전보다는 못하죠. 세계적으로도 프라모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시장 내에서 아카데미과학의 점유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아카데미과학의 주력 상품은 서바이벌 게임용 총과 비비탄, 장난감들이에요. 프라모델의 매출 비율은 20%가량입니다."

    ―어떻게 프라모델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까.

    "내 취미였어요. 처음에는 무선조종 비행기 만들어 날리는 취미를 가졌다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비행기나 탱크 프라모델들을 만드는 걸로 발전했죠. 1960년대에 어른이 그런 걸 만들고 있으면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었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돈도 꽤 필요했는데 교사 생활하면서 돈이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새것은 못 사고 청계천 고물상에 나온 프라모델 부품들을 조립해서 만들곤 했죠. 출근은 학교로 하고 퇴근은 청계천으로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만든 모형을 남의 점포에 진열해놓으면 장식용으로 사가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이익을 상점 주인과 내가 나눴어요. 그 돈으로 다시 새로운 프라모델을 구해 만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편생활을 그만두었군요.

    "서울 돈암동·삼선교 일대에서 8년간 과학 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걸 시작한다니까 아내는 물론이고 친구들이 절대로 하지 말라고 뜯어말렸죠.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접고 이런 쓰레기 같은 물건을 만드느냐고 난리였어요. 친구들인 '너는 장래에 희망이 없다'며 만나주지도 않을 정도였어요. 하하하."

    ―반대를 무릅쓰고 창업을 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본에서 일찌감치 프라모델 산업이 발전했는데, 그것을 책으로 읽어보니 우리나라도 앞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전망이 밝을 것이란 확신을 했습니다. 그때는 전국에 프라모델 만드는 사람이 몇 백명 수준이었거든요. 결국 그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을 했어요. 처음엔 부잣집 아이들 취미였지만, 점점 누구나 할 수 있는 장난감으로 바뀌었고 나중엔 장난감이 아니라 어른들의 취미로 자리 잡았죠."

    ―맨 처음 내놓은 상품이 무엇이었습니까.

    "전종(電鐘)이라고, 스위치를 누르면 따르릉하고 소리가 나는 종이였어요. 요즘 볼 수 있는 비상벨의 한 20분의 1 크기쯤 됐죠. 이것 만들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데 재료를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어요. 그 재료를 종 따로, 코일선 따로 해서 혼자 몇 천개씩 만들었죠. 근데 이게 9월 1일부터 20일까지밖에 안 팔려요. 그때 배우는 교과서에 나오고 말거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프라모델을 만들기 시작했죠. 잠수함, 탱크, 배 같은 걸 만들었는데 요즘 휴대폰보다 작은 크기였어요. 고무줄을 감았다가 놓으면 1m쯤 움직이는, 초보적인 수준의 프라모델이었죠."

    ―그것 역시 설계를 하고 금형으로 찍어내야 했을 텐데요.

    "외국 만화책을 보고 설계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어설펐죠. 그게 아카데미과학을 창립한 1969년의 일입니다."

    어느 정도 회사가 자리를 잡자 모형으로 만들 대상의 설계도를 구하거나 정밀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대부분 제품이 군사 무기였으므로 접근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설계도를 구하지 못해 전투기를 줄자로 재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프라모델 포장 상자에 등장하는 그림은 일본의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그린다. 그는 "비행기 그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사람이 일본인인데, 한 장에 200만원을 호가한다"고 했다.

    ―회사 이름을 '아카데미과학'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까.

    "오래전부터 창업을 하면 아카데미란 단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교육적인 것을 해야겠다는 뜻이었죠. 이것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이란 단어를 붙인 거죠."

    경기 의정부시 용현산업단지에 있는 아카데미과학 본사에서 직원들이 신제품 금형을 개발하고 있는 모습. /채승우 기자
    ―회사가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한 10년 정도는 걸렸던 것 같아요. 5년이 지나서야 '안방공장'을 벗어나 점포를 차렸으니까요. 그때 점포를 삼선교에 열었는데, '삼선교 아카데미과학'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꽤 유명했어요. 삼선교에 '나폴레옹 과자점'이라고 있죠? 그 집하고 나하고 같은 해에 시작했어요. 그래서 삼선교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 나폴레옹 과자점하고 아카데미과학이다, 그런 말도 있었죠. 하하하."

    ―프라모델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실물을 정교하게 축소해 놓은 것을 직접 만든다는 게 매력이죠. 48분의 1, 72분의 1, 100분의 1 스케일에 맞춰서 실물과 똑같은 모양과 질감으로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 보통 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성격이 꼼꼼한 편인데, 부품이 많은 건 손으로도 집기 어려울 만큼 작거든요. F16 전투기는 부품이 480개나 됩니다. 이걸 핀셋으로 하나씩 집어서 접착제로 붙여야 하는데, 성격 급한 사람은 조금 하다가 내던져버리죠."

    ―그런 모형을 완성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요.

    "그건 정말로 천차만별이에요. 직장생활 하면서 틈틈이 만들려면 석 달은 걸릴 거예요. 그런데 성격 꼼꼼한 사람이 마침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고 이것에 제대로 취미를 붙이면 2~3일 만에도 만들 수 있어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교육 효과도 있지요."

    ―그간 몇 종(種)이나 개발해서 내놓았습니까.

    "글쎄요. 한 500~600가지는 될 거예요. 그중에 제일 효자 노릇한 제품은 '타이타닉'이에요. 한 50만개 이상 팔렸으니까요.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완성품을 전시해 놓으면 아주 그럴듯한 모형이라고 자부합니다."

    ―이 사업에도 위기가 있었을 텐데요.

    "전자오락이 등장한 1980년대가 위기였죠. 아이들이 전부 컴퓨터 게임으로만 몰렸으니까요. 그때 수출로 눈을 돌렸어요. 아마 내수에만 머물렀다면 위기가 길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세계 60개국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타미야', 독일의 '레벨'에 이어서 세계 3위 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카데미과학 말고 프라모델 만드는 회사가 한 100군데가량 있었어요. 돈이 된다 싶으니까 엄청나게 이 사업에 덤벼들었죠. 지금은 서너 군데나 남아있나? 그것도 새로운 모형은 못 만들고 예전 것을 계속 찍어내는 수준이죠."

    아카데미과학은 2010년 지식경제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선정되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 완구 쇼에서 1990년 이후 매년 '올해의 모형상'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의 아들 명관(42)씨가 2009년 입사해 현재 전무를 맡고 있다. 그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합류했다. 그가 입사한 뒤 아카데미과학은 애니메이션 방영과 동시에 제품을 생산한 '로보카 폴리' 시리즈로 큰 히트를 쳤다.

    ―애초에는 이 사업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아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 오래 근무한 유능한 직원을 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이것을 가업으로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사업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프라모델 회사가 100개나 되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품질이죠. 조금이라도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아서 올바른 상품을 내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내가 500만원으로 창업했는데, 지금 돈으로 치면 한 5000만원쯤 되려나? 하여튼 오로지 더 정교하고 더 실물에 가까운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밤잠도 자지 않고 이 일에 매달렸어요. 그것 말고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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