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 2녀를 둔 이채필(56) 고용노동부 장관은 평소 고용부 직원들에게 "나는 내 자식들 결혼식에 '손님'으로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결혼식은 신혼부부가 주인공이지, 부모가 주인공이 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김황식(64) 국무총리와 김금래(60) 여성가족부 장관이 "고위 공직자부터 자기 자식을 작은 결혼식 시키겠다고 약속하자"고 권했을 때, 이 장관은 흔쾌히 응했다.
역시 3남매를 둔 권도엽(59) 국토해양부 장관도 망설임 없이 "아직 미혼인 두 아이를 위해 작은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평소 마티즈 승용차를 몰고, 공무(公務)로 이동할 때만 관용차를 이용한다고 알려졌다.
외아들이 서해 백령도에서 해병대 장교로 복무 중인 유영숙(57) 환경부 장관은 "나는 주례도 작은 결혼식 하는 사람만 서준다"면서 "'세 여자(신랑·신부 어머니와 신부)만 마음이 맞아도 결혼식 비용이 줄어든다'는 기사에 정말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 세 사람뿐 아니다. 세계를 상대로 우리 국익을 지키는 김성환(59) 외교통상부 장관, 통일 준비를 책임지는 류우익(62) 통일부 장관, 국가의 규율을 관장하는 권재진(59) 법무부 장관, 우리나라 산업 정책의 방향을 책임진 홍석우(59) 지식경제부 장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들이 "자녀를 결혼시킬 때, 가까운 사람들만 초청해 작고 의미 있는 예식을 치르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했다. 15개 부처 장·차관은 물론, 공정거래위·금융위와 7개 산하기관·독립청의 수장까지 총 47명이 본지와 여성가족부의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동참한 것이다.
박재완(57) 기획재정부 장관은 "결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인 만큼, 시작은 각자가 0.5씩 버려야 살아가면서 하나를 두 개로, 세 개로 불려나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장·차관 상당수는 "결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묘안을 임기 중에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짜내겠다"고 했다.
1남 1녀를 둔 임채민(54)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출산을 해결해야 할 복지부 장관으로서, 고비용 결혼 문화를 바꾸기 위해 '나부터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딸 하나를 둔 이주호(51)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학과 협의해 대학 캠퍼스를 예식 공간으로 개방하도록 독려하고 있는데, 이미 20개 대학이 흔쾌히 캠퍼스 개방을 약속했다"고 했다.
최광식(59)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선일보 기사에 자극받아 4월부터 중앙도서관 국제 회의장과 올림픽공원을 일반인들에게 예식 공간으로 개방하고,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겐 우선권도 드리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체면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다들 간소한 결혼식을 원하면서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결국 남처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그런 악순환을 끊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봉두완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의장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 고위 공직자들의 용기에 마음이 흐뭇하다"면서 "이번 서약의 파급력이 단순히 공직 사회를 넘어 전문직, 기업체 임원, 기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