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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이 구닥다리? 세계가 탐내는 엘리트 전통이죠"

  • 안동=전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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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9.21 03:06 | 수정 : 2012.09.21 14:24

    정옥자·페스트라이쉬 교수 안동 군자마을서 토크 콘서트
    정옥자 교수 - "선비는 한마디로 '맑음'의 덕목,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힘"
    페스트라이쉬 교수 - "영국 하면 젠틀맨 생각나듯 한국 하면 선비 떠올리게 해야"

    "요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의 대표로 삼기에는 부족해요. 썬비(선비) 정신이야말로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페스트라이쉬 교수)

    "제가 대학생 시절일 때만 해도 선비 하면 구닥다리, 시대착오라고 했어요. 수십년이 지나 이런 선비 행사도 열리고 먼 데서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정옥자 교수)

    지난 19일 오후 경북 안동 시내에서도 차로 30분쯤 더 들어간 외내(烏川) 군자마을. 500년 가까운 세월의 무게가 한눈에 느껴지는 탁청정(濯淸亭) 마루 위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요즘 지식 문화의 새로운 '표준'이 되다시피한 '토크 콘서트' 바람이 '선비의 고장' 안쪽 깊숙한 곳까지 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이 '한국적 리더십 선비 정신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멍석을 깔았고, 정옥자(71) 서울대 명예교수와 미국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48·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교수가 사회자인 노원규 안동 MBC 아나운서를 징검다리 삼아 말을 이어갔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막힘없는 한국말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청중석에는 김세중 광산 김씨 예안파 탁청정 종손을 비롯한 문중 내외 인사, 서울에서 온 김진수 선비리더십 아카데미회장, 박민용 정신과학회장, 김임숙 KB밸브 사장 등 전·현직 CEO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체 '선비 정신'은 무엇일까. 정 교수는 "자기 수양 위에서 공동체에 헌신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태도, 인정과 의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품격"이라며 "오늘날 리더들에게 더없이 필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라면 '맑음'의 정신"이라고도 했다.

    여성 교수가 일찌기 선비 정신에 빠진 계기는 호기심이었다. "주부 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시류는 사회경제사였어요. 하지만 저는 조선 500년을 지탱한 힘을 문화에서 찾아보려 했어요. 중국 왕조 평균 수명이 150년인데 어떻게 조선은 세계 최장수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 답이 선비 정신이었어요."

    안동 군자마을 탁청정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정옥자(오른쪽) 교수가“한때‘시대착오’로 여겼던 선비 정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것이 반갑다”고 하자, 페스트라이쉬 교수는“선비야말로 세계를 향해 한국이 내놓을 만한 문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밖에서 본 선비 정신'을 말했다. "저 같은 외국인 눈에 선비는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지금 시대를 두고 다 위기라고 하는데 미국에선 그 원인을 '무책임한 엘리트'에서 찾습니다. 과거의 책임 있는 엘리트 전통이 다 사라진 거지요. 한국의 선비 정신은 새로운 각성의 촉매이자,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엘리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 교수는 "선비들이 그토록 중시했던 '명분'이 오늘날 그저 핑계 거리를 뜻하고 '극기'가 운동선수 용어로나 쓰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고,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일본 하면 사무라이가 떠오르는데, 한국은 삼성·현대 같은 기업 브랜드가 먼저 떠오른다. 영국의 젠틀맨이 그렇듯이 앞으로 '선비'를 한국의 고급문화 콘텐츠로 키워가면 어떨까" 했다.

    청중석에선 "아이들에게 선비 정신을 설명하려면 쉬운 사례가 필요한데 어려움을 느낀다" "외국인 중에도 선비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늘고 있다. 콘텐츠를 현대 생활에 맞게 구체화해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비 문화의 아우라는 놋그릇에 담겨 나온 정갈한 다과와 정가(正歌) 공연에서도 느껴졌다. "청사안~은 어찌이~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대금과 장구에 맞춰 퇴계 선생이 지은 평시조를 구성지게 읊은 남창가곡 예능보유자 김경배(72·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선생은 "옛 선비들은 음악에도 절제가 있었다. 감정을 있는 대로 표출하지 않고 적절히 누르고 풀어낼 줄 알았다"고 했다.

    어느새 해는 지고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운치를 더했다. 한지수 한컴 대표는 "선비 선비 하면서도 그게 뭔가 늘 의문이 들곤 했는데 오늘 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나니 풀리는 것 같다. 먼 길 온 보람이 있다"고 했다.

    정옥자 교수

    서울대 규장각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등 저서에서 선비 정신을 전파해 왔다.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교수


    하버드대에서 ‘박지원의 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출간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서 한국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군자마을 탁청정(濯淸亭)

    군자마을은 500~600년 전부터 광산 김씨가 집성촌을 이룬 곳. 조선 시대 안동 부사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이 “이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곳 종택 정자인 탁청정은 조선 중종 36년(1541년)에 지은 것을 안동댐 건설 때 수몰을 피해 이곳으로 통째로 옮겨왔다. 석봉 한호(韓濩·1543~1605)가 현판 글씨를 썼고 정자 안에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 등의 시구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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