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은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구화한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그 풍경이 파괴된 점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지난 2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받은 중국 건축가 왕수(王澍·49·사진)씨가 19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화여대가 주최한 '김옥길 기념강좌'에서 강연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20일 강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건축이 자연에 대한 윤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왕수씨는 서울에 대해 "야트막한 산들이 가까이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고층 빌딩이 그 산을 다 가리고 있다"며 "풍경이 아니라 빌딩이 보인다는 것은 현대화가 아니라 문화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건축적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동아시아 여러 도시가 여전히 고층 건물을 중시하고 건축가의 중요한 업적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고층빌딩 중심의 건축은) '더 이상 하지 말자'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도시들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은 남들이 버린 것을 따라가서 줍는 것, 결국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건축에 중국의 전통을 접목하는 작업을 해온 왕수씨의 건축은 '지역성(地域性)'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들도 그의 작업에 대해 "지역의 건축적 맥락에 뿌리내리면서도 보편적"이라고 평했다. 왕수씨는 "'건축의 지역성'은 그 지역의 자연,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 설계한 대학 캠퍼스 부지에 높이 50m쯤 되는 산이 있었다. 작은 산이었지만 깎아 없애지 않고 살려서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건축 자재도 중요하다"며 "과거 10여년 동안 철거된 전통 가옥에서 나온 재활용 자재를 많이 활용했다. 건축가라면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