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주 세대 남편들은 집안 대소사(大小事)를 아내에게 맡기고 살아온 사람이 많다. 그런 한국 중년 남성들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위 공직자, 정치인, 건축회사 대표부터 평범한 중산층까지 수많은 아버지가 "이런 캠페인 왜 진작 하지 않았느냐"고 반기면서,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통일 문제 전문가인 김태우(62) 통일연구원장은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우리 사회가 바로 가는구나' 싶어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고 했다. 그는 평소 화려한 결혼식장에서 "꽃값만 수백만원 들었다" "식대가 1인당 10만원 넘는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게 무슨 낭비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7년 전 부산의 한 교회에서 가족·친지 50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큰딸을 결혼시켰다. 양가 부모가 의논해 예물·예단도 생략했다.
"장남과 둘째 딸에게 '너희도 똑같이 결혼시키겠다'고 미리 말해뒀습니다. 정말 반가운 청첩장이 몇 장이나 되나요? 많은 사람이 축의금 준 사람 명단을 작성해놨다가 '빚 갚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1000명에 그치지 말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이재술(51) 대구광역시의회 의장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딸과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우리 가족부터 악습을 끊자"고 했다. 이 의장은 "내 아이들부터 가족·친지만 모시고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도 월세부터 시작하게 하겠다"면서 "이번 캠페인이 내 마음을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했다.
"갓 지방의원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돈 잔치' 결혼식을 숱하게 봤습니다. 사회지도층 자녀 결혼식에 가보면, 하객들이 줄 서서 혼주들과 악수한 다음 예식은 보는 둥 마는 둥 밥 먹으러 갑니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 올린 신혼부부들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이번 캠페인을 통해 신랑·신부·혼주·하객 모두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배영민(54) 계리디자인 대표는 "두 딸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캠페인을 보고) 마음을 새롭게 먹었다"고 했다. 지금은 알짜 중소기업 CEO지만, 1988년 결혼할 때만 해도 그는 조그만 디자인 회사 직원이었다. 서울 동작구 반지하 다세대주택이 첫 보금자리였다.
"주위에서 '호텔에서 결혼식 하는 데 7000만~8000만원 들었다' '누구는 부모가 서울 시내에 신혼집을 사줬다'고 하길래 '아, 다들 그렇게 사나 보다' 했어요. 저도 집 없는 설움을 겪었기 때문에 딸들은 결혼할 때 꼭 집을 마련해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더 큰 사랑 같아요."
충남 보령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는 박종복(55)씨는 1988년 단칸방이 딸린 조그만 장난감가게(26㎡·8평)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박씨는 "부엌을 빼면 누울 자리만 겨우 남는 방이었지만, 아내와 차곡차곡 모아 지금은 방 네 칸짜리 단독주택을 직접 지어 살고 있다"고 했다.
"내 아이들에게 예물·예단 줄여서 신혼집 얻고, 한푼 두푼 아껴서 살림 늘려가는 재미를 가르치고 싶어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하객 수백 명을 초청해서 혼사를 치른 친구들이 '힘만 들고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