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학창시절 별명 '문제아'… 신념 꺾지 않는 아웃사이더 기질

조선일보
  • 배성규 기자
    입력 2012.09.17 03:00 | 수정 2012.09.18 07:58

    대선후보까지 걸어온 길
    ① 출생~청와대 입성까지
    어린 시절… 피란민촌서 출생… 공부 잘 했지만 고교 때 네번 정학 맞아
    청년 시절… 유신 반대시위로 제적 후 강제징집… 특전사 A급 병사로
    律士의 길… 유치장에서 사시2차 합격 파티…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운명의 길… 일곱살 위 노무현과 첫 만남서 "같은 科라는 동질감 느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59)는 1982년 자신보다 일곱살 위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이래 30년 동업자이자 그림자였고 평생 '운명공동체'였다. 노 전 대통령 사거(死去) 이후 계승자로 자리매김했고, 마침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피란촌서 태어난 '문제아' 문재인

    문 후보는 1952년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경남 거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맨손으로 피란길에 나섰다가 객지에서 문 후보를 낳았다.

    경남고 재학 시절의 문재인 후보(가운데 친구를 안고 있는 이). 문 후보는“고교에 입학하고 머리가 굵어지며 사회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게 생겼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 측 제공
    흥남시청 농업계장이었던 부친은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문 후보를 업고 다니며 계란 행상을 했다. 문 후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전 가족이 연탄 배달로 생계를 이었다고 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책 '운명'에서 '연탄 검댕을 묻히며 리어카를 끄는 일이 창피해 툴툴거렸고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일쑤였다. 부산 영도의 신선성당에서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줄 서는 것이 몹시 싫었다'고 했다. 이때 그는 영세를 받았으나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

    문 후보는 경남중·고 시절 별명이 '문제아'였다. 처음엔 그냥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었다. 하지만 반항심이 생기면서 정말 문제아가 됐다고 한다. 그는 "빈부 격차가 확연한 교내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세상의 불공평함과 위화감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문 후보는 이른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고3 때는 술·담배도 했다. 그는 친구에게 시험 답안을 보여주다 두 번, 술을 마시다 두 번 정학을 당했다. 입시 공부는 뒷전이었으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특전사 복무 시절의 문재인 후보. 문 후보는“군대 경험이 나를 훨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 측 제공
    경남고 동기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다. 신념에 배치되는 일은 용납하지 못했고, 제도권에 맞는 성격은 아니었다"고 했다.

    문 후보는 서울대 상과대학에 응시했다가 떨어져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사학(史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마음을 바꿨다.

    그는 1·2학년 때는 학교도 잘 안 가고 시험도 빠졌다. 친구들과 유랑여행을 다니며 심한 '청춘앓이'를 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4년 교내 첫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듬해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 집행당한 다음 날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구속돼 제적당했다.

    ◇유치장서 사법시험 합격 파티

    그는 석방과 함께 강제 징집돼 특전사에 배치됐다. 6주 훈련이 끝날 때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점프(공중 낙하)와 수중 침투 등 군이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해냈고 'A급 사병'이 됐다. '닥치면 해 낼 수 있다'는 군 경험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1978년 제대한 문 후보는 복학도 취직도 못 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는 현실 적응 능력이 별로 없었지만 선비 같은 분이었다. 평생 욕 한 번 안 했고, 나도 욕을 안 하고 자랐다"고 했다. 그는 부친에 대한 회한 때문에 사법시험을 보기로 했다.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몇 개월 공부한 끝에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고 이듬해 2차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또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문 후보는 유치장 안에서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당시 학교 관계자와 동창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면회왔는데, 경찰서장이 허락해준 덕에 이례적으로 유치장 안에서 소주 축하 파티를 열었다. 사법연수원 동기 중에는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반골'들이 많았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판사를 지망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에서 탈락한 뒤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문재인 후보는 경희대 후배 김정숙씨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시절 MT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김씨가 문 후보의 머리를 빗겨주며 웃는 모습. /문재인 후보 측 제공
    문 후보는 같은 대학 2년 후배(성악과)인 부인 김정숙(58)씨를 대학 축제 때 파트너로 처음 만났다. 김씨가 감방·절·군대로 문 후보를 면회 다니는 등 7년간의 연애 끝에 1980년 결혼했다. 처가 쪽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문 후보는 "갈 데까지 갔기 때문에…"라고 했다.

    ◇노무현의 동업자가 되다

    문 후보는 1982년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첫 만남에 대해 "'같은 과(科)'라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무실 운영과 사건 수임은 거의 노 전 대통령이 하고 문 후보는 변호 업무에 전념하면 됐다. 두 사람은 시위·노동 관련 사건을 한두 건씩 맡다가 본격적으로 시국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건을 자꾸 맡으면서 변호사 사무실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노동·인권 사건 센터처럼 됐다.

    1987년 6·10 민주화운동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사실상 변호사 업무에서 손을 뗐고, 문 후보가 사무실 살림을 전담했다.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문 후보는 "뒷일은 맡기고 정치권으로 가시라"고 했다 한다. 이후 문 후보는 부산에 남아 동의대 사건 등 시국·노동 사건 변호에 전념했다. 1995년엔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하면서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변호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을 지낸 문 후보가 노 전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문재인 후보 측 제공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문 후보보다 일곱 살 위였지만 말을 놓지 않았다.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야 반쯤 말을 낮췄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하자 문 후보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한 행사에서 문 후보를 소개하면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했다. 오랜 동업자이자 후원자에 대한 최대의 찬사였다. 그는 노 후보 당선 때 "그 이후 고난은 생각지 못한 채 그날의 아름다운 밤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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