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의 추적] '총수 구명 탄원서'에 사인도 안해놓고 사과한 안철수

조선일보
  • 강훈 기자
    입력 2012.09.15 03:23

    브이소사이어티, 법원 제출한 탄원서에 安원장 이름은 없었다
    회원 65명 중 44명이 서명
    구명 얘기 자연스레 나와 초안 만들어 회원들 열람… 일부는 개인사정으로 불참
    머쓱해진 安원장측
    일부 언론서 의혹 제기하자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하지도 않은 일 곧장 사과
    가슴 쓸어내린 새누리
    8월 폭로하려다 선수 뺏겨… 먼저 했다면 "무책임한 공세" 거센 반격 당할 뻔

    지난 7월 30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태원 SK 회장이 2003년 구속됐을 당시 '브이(V)소사이어티' 회원들과 함께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는 언론 보도에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재벌 개혁을 주장했던 안 원장이 재벌 구명 운동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으나 일부에선 안 원장의 즉각적인 '고백'과 '사과'에 대해 호평을 했다. 그런데 당시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확인해본 결과 서명인 44명 중에 안 원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2003년 4월 1일 재벌 2세와 벤처기업가의 사교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 측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최 회장을 선처해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브이소사이어티에 대해 '국내 벤처기업을 대표하는 유망 중소기업의 경영자들과 대기업의 젊은 경영자들이 모여 매주 경제 포럼을 갖는 커뮤니티'라고 소개한 뒤 '이런 모임을 통해 피고인(최 회장)과 자주 만나면서 그의 사람됨, 기업관과 국가관에 대해 상당 부분 잘 알고 있어 제1심 재판 중에 이렇게 과감히 선처를 호소하는 글을 올린다'고 적혀 있다.

    탄원서 끝 부분엔 해당 기업인의 이름과 자필 사인이 담겨 있는데, 서명한 기업인은 모두 44명이었다. 서명인 1번은 이찬진(드림위즈 대표·당시 직책)씨였고, 2번은 이해진(NHN 대표)씨, 3번은 당시 브이소사이어티 대표였던 이형승씨였다. 이어 백종관(보이스웨어 대표)씨, 김남구(동원증권 부사장)씨, 박규현(이네트 대표), 박창기(세코이아 대표)씨가 각각 4~7번 서명인으로 등장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2003년 최태원 SK 회장이 구속됐을 당시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과 함께 최 회장 구명 탄원서를 낸 것에 대해 지난 7월 사과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탄원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왜 불필요한 사과를 한 것일까. 사진은 지난 7월 경기도 수원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 건물을 나서고 있는 안 원장 /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이었던 LG가(家)의 구본능(희성 대표)씨, 구본천(LG벤처투자 대표)씨, 신동빈(롯데 부회장)씨, 정몽규(현대산업개발 회장)씨, 조동만(한솔 아이글로브 대표)씨도 이름을 올렸다. 이 모임 회원으로 2006년 말 안철수연구소에 합류했던 김홍선(시큐어소프트 대표)씨는 22번째 서명인으로 확인됐다.

    반면 당시 안철수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안 원장은 탄원인 명단에 없었다. 안 원장처럼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이면서도 탄원서에 이름이 없는 기업인으로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등이 있었다. 당시 회원은 65명으로 알려졌는데 대략 20명이 탄원서 제출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안 원장은 일부 언론에서 탄원서 서명 의혹이 제기되자 곧바로 이를 시인했다. 안 원장은 "10년 전의 그 탄원서 서명에 대해 당시에도 부담을 느꼈고 내내 그 일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왔다"면서 "인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고도 해명했다. '깔끔한 사과'였지만 좀 더 깊이 생각했다면 안 해도 될 사과를 한 셈이다.

    브이소사이어티는 당시 모임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최 회장이 구속되자 회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구명 운동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탄원서 초안은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작성하고 회원들이 열람했으며, 서명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일부 회원들은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브이소사이어티 전체 회원 명의로 법원에 제출되는 탄원서에 서명한 일이 있다"는 안 원장의 해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당시 모임 대표였던 이형승씨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다들 기업 대표인데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문제는 아니었다. 전원이 다 한 것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기업인들이 피고인을 위해 탄원서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3년 분위기가 더욱 그랬다. SK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의 형사9부(수사 도중 금융조사부로 개명)는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팀의 리더였다.

    부부장 검사는 현재 삼성가(家) 상속 분쟁 사건에서 이맹희 회장 측을 변호하는 법무법인 화우의 차동언 변호사로 역시 기업이 두려워하는 '칼잡이'였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SK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의 주력 사건이었다. 검찰 눈치를 보느라 기업인 입장에선 탄원서 서명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 회원의 경우 탄원서 서명을 놓고 '의리'와 '실리' 사이에서 고민했으며 일부는 개인적 '소신'을 이유로 서명에 불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 측은 탄원서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었다고 한다. 법조계와 SK에서 관련 내용이 흘러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원장 측에선 이미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어색한 상황이 돼버렸다. 물론 안 원장이 당시 탄원서 서명에 참여하겠다고 했음에도 브이소사이어티의 착오로 명단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지난 8월 탄원서 의혹을 폭로하려다 언론이 미리 보도하고 안 원장이 바로 인정하는 바람에 김이 빠졌었는데 만일 먼저 폭로했다면 나중에 '근거 없는 네거티브'로 거센 반격을 받을 뻔한 사안이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2000년 9월 최 회장 등의 주도로 재벌 2·3세와 벤처기업인이 출자해 만든 회사이자 사교 모임을 말한다. 안 원장은 2010년 말 현재 브이소사이어티 지분 3.88%를 부인 김미경 교수 명의로 가지고 있다.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첫 글자 브이(V)는 벤처(Venture)에 따온 것으로 한때 회원 수가 70명 가까이 늘어났다. 2006년 최 회장이 모임에서 탈퇴하면서 공식적인 모임은 사라지고 지금은 기업 형태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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