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는 기묘한 성적(性的) 불평등이 존재한다. 다른 모든 면에선 여성들이 '우리도 남자와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한다. 집값만 예외다. 딸 가진 부모 대다수가 내심 '집은 남자가 해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아들 가진 부모는 '안 해주면 내 아들이 기가 죽겠구나' 걱정한다. 젊은 여성들은 직장에서는 평등을 외쳐도, 자신이 결혼할 때는 집 해오는 남자와 만나고 싶다고 한다. 나도 여자지만, 이건 참…."

서울 서초동에서 20년 이상 활동해온 이혼 전문 변호사 A씨의 말이다. 그는 "집값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실제로 예단 갈등으로 이혼한 사람들 판례를 분석해보면, 갈등의 뿌리에 '집값'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딸 가진 부모가 '남자가 전셋집은 해와야 한다'고 하면, 아들 가진 부모가 울며 겨자 먹기로 집값을 댄 뒤 '나도 받아야겠다'고 예단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딸 가진 부모가 '남들 안 하는 일 한 것도 아니고, 자기 아들이 살 집 해주고 너무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발끈하는 패턴이 가장 흔하다.

그 결과, 이혼·파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치닫지 않더라도 앙금을 안고 출발하는 부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현실적인 이유로 집값을 양가가 분담해도, 아들 가진 부모는 "며느리 앞에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딸 가진 부모는 "사위가 집도 제대로 못 해왔다"고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아들 셋을 차례로 장가보낸 정인옥(가명·65)씨는 "집값 못 댔다고 아들·며느리 눈치 보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지원했다"면서 "며느리들이 당연한 줄 알아서 쓸쓸하고 괘씸하다"고 했다. 지방에서 어렵게 사는 정영숙(가명·52)씨는 "아들 집 사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했다.

가족·부동산 전문가로 구성된 본지 자문단은 "이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집값을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면서 "결혼 당사자들이 자기 힘으로 원룸에서라도 신혼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주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양가가 도와주려면 형편에 맞게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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