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 등의 가요를 히트시키며 1970~80년대 최고 인기 가수로 사랑받았던 최헌(64·사진)이 10일 오전 2시 15분 지병인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호준(27)씨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버지는 지난 해 5월 암 선고를 받은 뒤 서울과 강원도 속초를 오가며 요양·치료를 해왔는데 1주일 전쯤 병세가 나빠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명지대에 재학중이던 1969년 김홍탁(69)이 이끌던 그룹 ‘히식스’의 보컬로 스카우트돼 본격 가수 활동을 시작한 최헌은 록에서 시작해 발라드와 성인가요 등으로 음악의 저변을 넓히며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김홍탁은 “70년대 초 히식스 멤버들과 팬들이 함께 하는 야유회를 떠났는데, 멤버별 버스 중 ‘최헌 버스’에 유독 여성팬들이 몰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히식스’ 해체 이후 ‘최헌과 검은나비’ ‘호랑나비’ 등의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던 최헌은 1976년 호랑나비 시절 발표한 ‘오동잎’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솔로로 전향한 뒤에도 ‘앵두’(1978년) ‘가을비 우산 속’(1979년)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78년에는 MBC 10대가수 및 가수왕과 TBC 방송가요대상 최고가수상 등을 휩쓸었다.
서구적인 느낌의 곱상한 외모와 여린 듯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스타성’을 두루 갖춘 최헌은 동시대 어떤 가수들보다도 여성팬들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최헌은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가요의 대세로 떠올랐던 ‘트로트 고고(록 사운드와 전통가요의 리듬을 버무린 음악)’ 열풍의 대표 주자로도 꼽힌다.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씨는 “대마초 파동 이후 위축된 가요계를 장악한 것은 이른바 고고사운드에 한국적인 ‘뽕끼’를 버무린 ‘트로트고고’였고 최헌은 윤수일과 함께 이 분야의 쌍두마차였다”고 했다.
유족은 부인 배영혜(58)씨와 1남 1녀. 발인은 12일 오전 5시 30분 서울 건국대 병원. (02)2030-7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