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윤덕의 사람 人] 첼시 플라워쇼 2년연속 최고상 수상한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조선일보
  • 김윤덕 기자
    입력 2012.09.08 03:12 | 수정 2012.09.08 21:26

    자연 그대로… 유럽을 매료시킨 '정원의 여왕'
    2011·2012년 첼시 플라워쇼 최고상 수상작 '해우소'와 'DMZ 금지된 정원'

    예쁘고 반듯한 고급스러운 정원은 가라
    경제난 겪는 유럽, 정신적으로도 피폐
    수수하고 거친, 생명력이 넘치는
    한국의 정원에 큰 감동받았다더라

    명예 얻었지만 남은 건 빚
    DMZ 만들땐 2억 넘는 돈 쏟아부어…
    막판 돈부족땐 英참전용사가 청와대에 편지
    후원자 없으면 내년엔 참가 안할래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은 어머니
    엄마는 화를 자연 통해 해소할 줄 아는 분
    엄마의 텃밭이 내겐 최초의 정원이었죠
    지방대 출신인 난 '결핍의 힘'으로 삽니다


    "투자 잘 받는 얼굴로 나오게 찍어주세요."

    카메라 앞에 선 '첼시의 여왕'이 엉뚱한 주문을 해서 웃음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돈' 때문에 황지해(36)는 올해 마음고생을 오지게 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정원박람회 '첼시 플라워쇼'에서 2년 연속 '최고상'을 수상했지만, 그로 인해 황지해는 '빚쟁이'가 됐다. "첼시에 두 번 다녀왔더니 자동차도 없어지고 집도 날아갔더군요(웃음)."

    실제로 2012 쇼가든(200㎡ 규모 대형정원) 부문 최고상과 영국왕립원예학회 회장상을 거머쥔 황지해의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개막 3주 전, 공정률 40% 단계에서 나머지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해 중단 위기에 놓였다. 호남의 건설업체 두 곳이 '파트롱(후원자)'으로 나타난 건 기적이었다. 'DMZ 정원'을 찾은 영국의 관람객들은 전쟁의 역설(逆說)로 남은 생태계의 보고(寶庫)에 탄성을 자아냈고, 필립 공·앤 공주·디자이너 폴 스미스 등 명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12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황지해가 자신의 작품‘동행’앞에 섰다.“ 막노동이나 다름없이 힘든 작업이지만 꽃과 나무를 심다보면 마음이 착해진다”며 황지해가 웃었다 /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4일,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황지해를 만났다.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에 가죽장화를 신은 폼이 나무를 심다 이제 막 달려나온 사람 같다. "햇볕에 그을려서가 아니라 원래 까매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삽을 들고 나왔다나 봐요. 하하!"

    첼시의 빚쟁이 '여왕'

    ―첼시의 스타가 빚쟁이가 됐다더라.

    "2011년 아티즌 가든(20㎡ 규모 소형정원) 금상 수상작인 '해우소' 작업할 때 이미 집을 저당 잡혔다. 우리 집 살림꾼인 남동생이 그래서 나를 미워한다(웃음). 'DMZ'만 해도 2억원 넘는 돈을 갖다 부었다. 마지막 공사비 5억원은 전라도 지역에 기반을 둔 호반건설과 남광건설이 각각 3억원, 2억원씩 기부해주셨다. 경기도 나쁜데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가 호남 작가라 광주광역시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다. 한 달 전 귀국해 빚진 분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첼시 플라워쇼'가 뭐길래 빚을 지면서까지 출품하나.

    "첼시는 1827년에 시작된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다. 영국왕립원예학회(RHS)가 주관하는 왕실 행사로, 정원예술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10년 전 첼시를 알게 됐다. 환경미술가로 활동해오면서 자연에 대한 갈증이 늘 있던 터에, 첼시 플라워쇼를 보고 정원만큼 자연과 예술의 완벽한 융합을 구현해낼 매개도 없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막연했지만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뭐랄까. 잊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첫 출품작인 '해우소: 마음을 비우다'에 이어 두 번째 출품작인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이 연달아 금상을 받았다. 당신은 완전히 무명(無名)이었는데도.

    "첼시를 준비하려고 2007년부터 런던에 나가 있었다. 출품은 엄두를 못 냈다. 좀 더 스킬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인치발드 정원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우리 전통 화장실인 '해우소'가 떠오르더라. 애국자여서가 아니다. 돈 없고 말 안 통하는 외국생활이 고달프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됐다. 유럽의 인공정원을 보며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 정원, 내가 자라면서 보아온 자연의 정원을 추억하게 된 것이다. 밤중에 일어나 변소에 가면서 보았던 밤별, 새벽녘 바람, 흙냄새 같은 것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학교도 포기하고 첼시에 설계도면을 보냈다."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1차로 RHS에 조경설계도면, 식재계획도, 드로잉,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3D를 보낸다. 2차로 올라가면 식재의 희귀성, 작품성에 대한 본격적인 심사가 이뤄지고, 3차에서 사이트 배정 통보가 오면 합격했다는 뜻이다."

    4일 광주에서 열린 귀국 보고회에 참석한 황지해의 손등이 글씨로 가득하다.“ 첼시플라워쇼 출품을 가능하게 도와준 후원자분들 이름이에요. 감사 인사 드릴 때 실수할까봐(웃음).” /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DMZ정원은 첼시 플라워쇼의 하이라이트인 '여왕가든' 옆자리에 사이트를 배정받았다.

    "트라이앵글 가든이라고 3면이 다 노출되는 까다로운 자리였다. 여왕가든 옆에 배정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으니 두려웠지만,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했다. DMZ정원은 1·2차 심사 때부터 워낙 관심이 높았었다."

    ―대형정원이라 작업하는 데 고생도 많았겠다.

    "우리 식재를 공수해 외국에다 정원을 만드는 작업이니 공사비도 3배 이상 들고, 통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엔 정원 전문 시공업체가 없어 공사도 우리가 직접 했다. 개막일인 5월 20일에 맞춰 일제히 꽃을 피워야 하니 1만여그루의 식재를 돌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지. 공사비는 바닥난 상태였고."

    ―그렇게 공들였고, 기대를 모았던 정원이 돈이 없어 무산됐다면, 주최 측인 영국왕립원예학회도 무척 실망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185년 전통의 쇼를 실패하지 않으려고 철저히 준비한다. 내가 포기하면 대체 작품이 바로 들어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작가가 내가 포기하기를 고대했을 거다. 개막 3주 전 포기각서를 쓰라는 최후통첩이 날아왔을 땐 가슴이 까맣게 타다 못해 비워지더라. 마음을 비우니 기적이 일어났다(웃음)."

    세계 정원 트렌드를 바꾸다

    300여종 1만여그루의 식재로 구성된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은 예쁘고 반듯한 정원이 아니다. 풀과 나무는 저절로 자란 듯 거칠고, 키를 맞춰 다듬지도 않았다. 황지해는 "명품 나무와 꽃 대신 들풀, 야생화를 심었다. 60%가 우리 토종 식물"이라고 했다. "군인들이 지혈할 때 썼던 쑥, 배 아플 때 짜서 마신 질경이, 대체식량이 돼 준 머루와 다래, 냉이, 민들레를 심었다"고 했다. 높은 초소와 철책선이 가로놓인 정원에는 전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산가족들의 편지가 담긴 병, 수천개의 군복 단추로 만든 단추길, 영국 참전용사들의 군인 식표 8000개로 만든 벤치…. 그 한복판을 물줄기가 관통한다.

    엘리자베스 뱅크스 영국왕립원예학회 회장은 '내가 평생 보아온 가든 중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더 타임스는 "철책과 초소로 꾸며져 생경한 이 작품은 올해 여왕이 만나게 될 가장 독창적인 정원"이라고 소개했고, 가디언은 "잡초가 보물로 변신했다"고 썼다. 영국의 한 원예전문잡지는 "DMZ정원이 전달하는 화해와 치유라는 주제는 첼시 플라워쇼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을 가볍고 예쁘기만 한 정원들로 만들어버렸다"고 평했다.

    ―해우소와 DMZ 모두 정원이 온통 이름없는 들풀, 들꽃이었다.

    "시골 출신인 내게 장미, 백합은 낯선 꽃들이다. 학교 화단에서나 겨우 보았나. 내가 놀던 들판에는 매자기, 물봉선화, 오이풀, 며느리밑씻개 같은 들꽃들이 지천에 널렸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그들이 덩어리를 이뤄 군식을 하면 정말 아름답다. 그 선과 형태, 색감이 주는 투명성을 나는 사랑한다."

    2012 첼시플라워쇼 쇼가든 부문 금상작인‘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영국 왕족을 비롯해 수많은 관람객이 이 정원을 찾았다. / 황지해 제공
    ―DMZ 정원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알다시피 유럽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고 할까. 유럽에서 정원은 상류층 문화였다. 부유층 사람들이 계절마다 명품으로 옷을 갈아입듯이 유럽의 부자들은 계절마다 값비싼 꽃과 나무로 정원을 치장했다. 첼시 플라워쇼 역시 희귀한 식재, 새로 개발된 종자, 아름답고 럭셔리한 꽃과 나무로 가꿔진 정원을 선호해왔다. 그런데 한국의 '해우소'와 'DMZ'가 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거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수수하고 거친 정원, 그러나 생명력이 넘치는 한국의 정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거지. 토일렛(화장실)이란 말을 저속하게 여기는 유럽인들이 거기에서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발견한 것이다."

    ―유럽정원의 트렌드를 바꾼 셈이다.

    "세계 3대 정원 쇼 중 하나인 '햄튼 코트 팰리스 플라워쇼'에서 올해 1등상을 받은 작품 타이틀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다. 이건 '해우소'와 'DMZ'의 영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처음 설계도면을 냈을 때는 다들 코웃음을 쳤다. 첼시 쇼를 앞두고 베팅이 있었는데 영국의 스타 정원디자이너인 가빈이 1위로 점쳐졌다. 피라미드 형태로 만든, 파티하기 좋은 정원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DMZ 정원이 최고상을 받았다. 가난한 마음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 앤 공주, 에드워드 왕자 등 왕실 가족이 관람했다더라.

    "필립 공은 '내가 죽기 전에 이 정원을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영광이다'라고 하시더라.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영국과 내가 황지해라는 작가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정말 섹시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일반 관람객 중 한 분은 '이 정원에 서니 마음이 고요해진다'고 하더라. 정원 공사를 도와준 자원봉사자 중 한 분은 '나는 지금 영혼의 양식을 먹고 있다'고 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영국 참전용사들도 DMZ정원을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하던데.

    "공사가 중단 위기에 놓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우리 청와대에 편지를 쓰셨다. 6·25가 잊힌 전쟁이 되지 않게 DMZ 정원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고대하셨다. 박람회장에 와서 많이들 우셨다."

    2011 첼시플라워쇼 아티즌가든 부문금상작인‘해우소:마음을 비우다’. 한국 정원의 저력을 세상에 알린 황지해의 첫 작품이다. / 황지해 제공
    '결핍'이 나의 힘

    황지해는 소위 말하는 '마이너리티'(비주류)다. 목포대 서양화과를 나와 광주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환경미술작업을 해왔다. "정원을 디자인할 때면 반드시 어머니가 떠오른다"고 말할 만큼, 고향 곡성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시골 아낙이었던 어머니가 예술적 원천이 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인 건가.

    "그림 그리는 것 말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교육열 있는 사람이 우리 어머니밖에 없어서 학교 미술실 전체를 나 혼자 쓰곤 했다(웃음)."

    ―어머니가 어떤 분이셨길래.

    "아버지 없이 3남매 먹여 살리려고 밥집도 하고 미용실 하면서 억척스레 살면서도 바람 부는 날이면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여인이었다. 시골 아줌마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했다. 가슴속 화(火)를 자연을 통해 해소할 줄 아는 분이었지. 지혜로운 바다라는 뜻의 지해(智海)란 이름도 어머니가 지어주셨다."

    ―조경이 아니라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정원 디자이너로 성공했을까.

    "어머니가 가꾸는 우리 집 텃밭이 내겐 최초의 정원이고 보물창고였다. 텃밭에서는 온갖 야채와 과일이 자랐고 내가 안 먹어본 과일이 없을 만큼 풍요로웠다. 텃밭에서 놀다가 잠들곤 해서 풀벌레한테 뜯기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초지에서 뒹굴며 자란 게 내가 정원 작업을 할 수 있는 영감이자 에너지원인 것 같다. 일단 주제가 잡히면 어떤 식물로 정원을 구성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쉽게 나온다."

    ―첼시의 스타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데 놀라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 있는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다. 운전을 해도 후진하기 싫어하는 성미라 재수는 죽어도 하기 싫어서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갔다. 그런데 훌륭한 교수님이 많아서 일찌감치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업을 경험했다. 중장비 자격증까지 땄으면 싶을 만큼 여러 능력을 원하는 정원 작업에 대학 시절 경험이 큰 거름이 됐다."

    ―환경미술가 그룹 '뮴'을 만들어 활발한 작업을 해왔다.

    "프랑스에서 환경 미술을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 덕분에 이 분야에 눈을 떴다. 교생실습을 나갔다가 시골 학교에 벽화를 그려준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지러지듯 기뻐하는 걸 보고 봉사그룹을 조직해 시골 학교와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뮴을 결성하게 된 동기다."

    ―왜 '뮴'인가.

    "글자 자체가 조형적이라서(웃음). 뜻은 없다. 자세히 보면 사람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우리 어머니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지역 미술가 그룹이지만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까지 올라와 환경 미술 작업을 많이 했다. 하도급 업체이긴 했어도 아파트 조경공사도 넌덜머리 나게 많이 했고. 그런 하드한 경험들이 첼시에서도 빛을 발했다."

    ―일류대 출신이었다면 첼시의 후원 기업이 바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는 결핍, 콤플렉스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웃음)."

    ―9월 말 일본 하우스텐보스에서 열리는 '가드닝 월드컵'에 출전한다고 들었다.

    "첼시에서 수상하니 여기저기 페스티벌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세계 톱10에 드는 디자이너들을 초청하는 거니 영광이긴 한데 솔직히 지친다."

    ―내년에도 첼시 플라워쇼에 도전할 건가?

    "아니. 이번에 너무 지옥 같은 경험을 해서 내년엔 안 갈 거다(웃음). 정부든 기업이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절대 안 간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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