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짓는 동사무소?… '은색 상자'로 편견 깼다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
    입력 2012.09.07 03:07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도화동 주민센터]
    흰 벽에 알루미늄 판 달고, 1·2층엔 야외 공간 확보… 방은 드문드문 '수다장'으로
    "주민센터는 주민이 쓰니까 더 아름답게 지어야 하죠"

    건축가 윤승현(왼쪽)·서준혁씨.
    서울 마포대로 옆 도화동길은 낡은 식당들과 상가, 오피스텔 등이 즐비한 곳이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간판과 재개발 아파트촌이 어우러져 어지러운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에 새하얗고 단순한 모양의 한 건물이 들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하얀 네모 상자 형태의 깔끔한 건물. 지극히 단순하기에 오히려 돋보이는 이 건물은 건축가 윤승현(48)·서준혁(47·이상 인터커드 대표)씨가 설계한 '도화동 주민센터'다. 과거로 치면 '동사무소' 건물인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게 '동네 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언론도, 시민도 시청·도청 같은 큰 규모의 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죠. 하지만 주민센터야말로 1년 365일 늘 동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고, 건물도 우리가 사는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 더욱 실생활과 밀접한 곳이에요. '이런 곳이 더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최근 주민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작은 규모의 공공청사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건물인데 많은 사람이 이걸 간과하고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포구가 발주해 지난달 완공된 '도화동 주민센터'는 은빛이 감도는 새하얀 색감에 모던한 디자인 등으로 '대충 짓기만 했던 작은 규모 공공청사에 귀감이 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달 말 서울시가 발표한 '2012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대지 920여㎡(280평), 연면적 4300㎡(1300여평), 지하 4층, 지상 3층짜리 건물로 8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올해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건축가 윤승현·서준혁씨의 설계작 서울 마포구‘도화동 주민센터’.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새하얀 색과 네모 상자 등 가장 단순한 디자인을 택했다. /사진가 김성진
    윤승현씨는 "5개의 도로가 중첩되는 복잡한 지역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청사만큼은 가장 깨끗한 표정으로 있었으면 했다"고 했다. "'주민센터가 어디냐'고 했을 때 마을 어디서도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콘' 같은 역할을 원했어요. 서울 도심이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디자인이 나온 셈이죠." 그는 "하지만 자칫하면 '하얀 상자' 자체가 너무 압박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긴 알루미늄 루버(louver·폭이 좁은 판)를 60도가량 사선으로 달고 네모 창도 비스듬하게 넣어 긴장감을 완화했다"고 했다.

    1층 민원센터와 3~4층 주민공간을 구분 짓는 야외정원(사진 위). 잔디를 깔아 도심 속 쌈지공원처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지하 공영주차장과 1층 민원센터 사이의 야외 플라자(사진 아래). 사선으로 디자인된 계단에서 주민들은 휴식을 취하고 공연을 볼 수 있다. /사진가 김성진
    동 민원센터인 동시에 공영주차장이고, 주민들의 문화센터인 이곳을 위해 건축가는 세 공간을 구분 짓는 두 가지 '경계선'을 넣어 자연스럽게 분리를 시도했다. 지하 4개 층 공영주차장과 1층 민원센터를 구분 짓는 1층 야외공간과, 1층 민원센터와 3~4층 주민공간을 나누는 2층 야외공간을 만든 것. 두 공간은 자연스럽게 연결돼 기존 '동사무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약 500㎡(150여평)의 야외정원 겸 플라자로 태어났다. 메시(그물코) 천장, 메탈패널 등으로 디자인의 생기를 불어넣은 이 공간에서 주민들은 공연을 보거나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건축가는 "작은 규모의 청사일수록 '최소한의 땅에 최대한의 건물'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작은 청사야말로 주민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공간을 양보하더라도 공공의 공간, 즉 야외정원만큼은 반드시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복도식 구성이 아닌‘섬’형식으로 방을 배치한 마을문고. /사진가 김성진

    주민 공간의 구성도 기존 소규모 청사와는 다르다. 복도식으로 방을 죽 늘어놓은 일반적 구성과 달리, 건축가는 3~4층 주민 공간에 섬(아일랜드) 형식으로 방을 드문드문 짜 넣었다.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서예를 배우러 온 뒤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을 특정한 동선 없이 돌아다니면서 주민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장기를 두는 등 다양한 '해프닝'이 벌어지길 원했다"는 설명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4층 꼭대기 천창을 다양한 각도로 둬 햇빛을 최대한 오래 머금을 수 있도록 고려한 것도 특징이다.

    건축가는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공건물이 도리어 가장 척박하게 지어지는 현실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주민센터나 보건소 같은 곳은 일반 서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잖아요. 이런 공간일수록 건물은 더 잘 지어져야 하고, 더 아름답게 지어져야 합니다. 나는 10평짜리 집에 살아도 저기 300평짜리 또 다른 내 공간이 있다는 것, 가난한 나를 사회가 감싸주고 있다는 것, 그런 느낌이 바로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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