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5일 경제 민주화를 둘러싸고 서로를 비난하면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 원내대표는 공약의 입법화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로 원색적인 용어 동원

두 사람은 이날 나란히 당 회의에 참석했으나 자리에 앉기 전에 서로 의례적 인사만 했을 뿐 회의 내내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한바탕 장외(場外) 설전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앞서 국회에서 열린 예산 당정(黨政)회의에서 "정치판에서는 정체불명의 경제 민주화니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그동안 '경제 민주화의 개념과 구체적인 내용이 명확지 않다. 일방적인 재벌 때리기로 흘러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또 최근 국내외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場外 설전 두 사람, 당 회의서도 싸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와 김종인 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5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총선 공약 실천 보고회에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이날도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이 같은 이 원내대표의 발언에 김 위원장이 직설을 퍼부었다. 그는 기자와 통화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 출정식과 후보 수락 연설에서 한 (경제 민주화) 얘기를 어디 허공에서 날아와 얘기한 것처럼 '정체불명'이라고 한 것은 상식 이하"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또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고 태어나서 그런 정치인은 처음 본다. 그런 정신 상태로는 얘기할 수 없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절제 없는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은 정서적 불구자'라고 했는데 이 원내대표가 거기 해당한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비판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경제 민주화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라면서도 "그런데 지금 여(與)든 야(野)든 '경제 민주화'란 이름 아래 기업을 위축시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 "입장 정리하겠다"

두 사람이 경제 민주화를 놓고 설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김 위원장은 "이 원내대표는 재벌 기업에 오래 종사해 그쪽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경제 민주화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개념"이라고 맞받아쳤다. 지난 4월과 6월에도 두 사람은 경제 민주화를 놓고 서로 뉘앙스가 다른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이 기회만 있으면 설전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대선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올 하반기에 본격화할 경기 침체 상황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를 놓고 인식 차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다른 관계자는 "두 사람이 대선 공약 수립의 주도권을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다.

박근혜 후보는 이날 지방 언론사 기자 간담회에서 "두 분이 차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그것(경제 민주화)에 대해 논쟁 내지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선을 앞두고 거기에 대해 한번 정리할 필요는 있다"며 "열정이지만 너무 혼란스럽게 비치면 안 되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 입장을 확실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