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0] '에로·그로·넌센스'의 1930년대

입력 2012.09.04 03:09

안석영이 그린‘뻐젓하게 거리에서 분갑을 들고 파우더로 얼골을 톡톡치는 사나희’(1930년 11월 29일자).
'느진 밤 전차 정류장에서 좀 호주머니가 불룩해 보히는 신사에게만 왕성하게 복숭아 빗 윙크를 보내' 돈을 뜯어내다가 경찰에 잡힌 '혼혈아 스틱껄',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지리산 팔척 거인 김부귀(金富貴)', 이발소에서 손톱을 깍아주고 돈을 받는 '마니큐어 껄'….

조선일보 1931년 신년특집은 지난해 일어난 음탕하고 기괴하고 어처구니없는 현상들을 시리즈로(1931년 1월 2·4일자) 소개했다. '자본주의 말기 현상'들로 '에로·그로·넌센스 난무한 제첨단상(諸尖端相)'이란 제목이 붙었다.

안석영(安夕影)이 '근래에 에로이니 그로이니 하는 새말이 물을 건너 조선에 온 뒤' '사나희의 얼골이 떡가루 속에 파무덧다 나아온 것 모양으로 분이 케케로 안 젓는' 화장한 남자의 출현에, 새해가 되면 '사나희'들이 '뻐젓하게 길거리에서' 화장을 할 테니 그 꼴을 어찌 볼까 걱정할 정도로(1930년 11월 29일자) '신현상'이 꼬리를 물 때였다. 편석촌(片石村·김기림의 호)은 '에로·그로·넌센스는 일련의 주문'으로 '현대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마국(魔國)으로 드러가랴면'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며, 에로(eroticism)는 '내복을 니저버린 여학생 레뷰(다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춤)의 거의 라체에 갓가운 다리같은 것'이고, 그로(grotesque)는 '렵기적 의미에서 백 퍼센트의 기괴미(奇怪美)를 가르처 하는 말'이며, 넌센스(nonsense)는 '현금 로서아 사조와 대항하야 세게를 풍미하는 이대 조류의 하나인 아메리캐니즘(Americaism)의 한 측면'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항하는 미국식 '가벼운 무의미'를 의미한다고 해설했다.

이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에 툭하면 에로나 그로, 넌센스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로 넌센스, 결혼이혼 광주곡(狂走曲)'(1931년 1월 18일자) '에로 그로의 산업화계획'(3월 27일자) '인육을 얻고자…, 신흥에 그로범죄'(10월 3일자) '에로 넌센스 일막'(1932년 6월 29일자) '그로 만점의 시체 금속 절도'(7월 28일자) '에로 그로 취체는 서장의 권한으로'(1933년 8월 7일자) 같은 기사가 이어지면서 1930년대의 '첨단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이광수(李光洙)는 "일반 민중이 도덕적 이상이 퇴폐해서 인생의 의무라든가 사업이라든가 하는 높은 희구를 버리고 오직 성욕과 호기심만 따르게 되니, 에로란 성욕적 흥미를 만족시키는 관념군이요 그로란 호기벽을 만족시킬 만한 관념군"이라고 해석했다('동광' 1931년 1월 1일자). 물론 '높은 희구'를 버리고 자극적 사치와 향락에 젖어간 '식민지 일상' 자체가 가장 큰 에로요 그로, 넌센스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