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옛날 사람

조선일보
  •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2012.09.02 23:31

    옛날 사람

    때론 사랑이 시들해질 때가 있지
    달력 그림 같은 창밖 풍경들도 이내 무료해지듯
    경춘선 기차 객실에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다
    넓은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든 그 설렘도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던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떨림도
    북촌 마을 막다른 골목 가슴 터질듯 두근거리던 입맞춤도
    그냥 지겨워질 때가 있지
    그래서 보낸 사람이 있지

    세월이 흘러 홀로 지나온 길을 남몰래 돌아보지
    날은 어둡고 텅 빈 하늘 아래 드문드문 가로등불
    오래된 성당 앞 가로수 길에 찬바람 불고
    낙엽과 함께 뒹구는 당신 이름, 당신과의 날들
    빛바랜 누런 털, 눈물 그렁그렁한 선한 눈망울
    영화 속 늙은 소 같은 옛날 사람
    시들하고 지겨웠던, 휴식이고 위로였던 그 이름
    늘 내 안에 있는 당신

    이제 눈물을 훔치며 무릎을 내미네
    두근거림은 없어도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곽효환(1967~ )

    그 흔적을 더듬어보고 싶다면 아름다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반추하여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완성된 사랑일 것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의 시간들이 소박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랑의 기억도 있고 당장 물리고 싶은 얽매인 연애도 있으니, 그리움은 미래를 향할까 과거를 향할까. 추억으로 만족할 수 없어 꿈을 갖는 것이 또한 사랑의 속성이니 다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이 맨 나중까지 나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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