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유산 개방·활용도 좋지만 훼손 안 되게 지켜달라"

    입력 : 2012.08.29 03:06

    경주서 亞 최초 회의 갖는 라오 세계유산센터 소장
    보존 전략·협력 방안 논의 "문화유산 개방시간과 범위 세계 도시들도 똑같이 고민"

    "옛날엔 이 길을 삼도(三道)라 불렀습니다. 가운데 높게 올라온 길이 임금이 다니던 길입니다. 신하들은 양옆 낮은 길로 다녀야 했지요. 오늘 큰손님이시니 왕의 길로 가 보시지요."

    "오, 그래요? 영광입니다."

    지난 27일 서울 창덕궁. 기쇼 라오(59) 세계유산센터(World Heritage Center) 소장이 이곳 신희권 관리사무소 소장 안내로 궁궐 안 돌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라오 소장은 올해 세계 문화·자연유산 협약 40주년을 맞아 28~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아태지역 세계유산도시 시장단 회의' 참석차 한국에 왔다. 세계유산센터 소장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오 소장 개인으로서도 첫 방문. 전날 오후 파리에서 날아와, 이날 아침 제1회 아시아 세계유산 담당자와 청년 NGO 대표 지역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바쁜 일정 중에도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 창덕궁은 빼어난 조형미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인정받아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라오 소장은 "모국 인도에도 왕궁이 많지만 한국 궁궐은 참 독특하다"며 즐겁게 디지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저기 보이는 한국 기와 지붕의 처마 선은 여인의 한복 소매 선을 닮았다고 합니다. 중국 처마 선은 아주 급하게 올라간 데 반해 한국 것은 지나침이 없지요." 신 소장의 설명에 라오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탄성을 발하기를 반복했다.

    기쇼 라오 세계유산센터 소장이 27일 세계유산인 창덕궁을 돌아보고 있다. 그는“와서 보니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지 알겠다. 한국인의 자랑이자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자산”이라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라오 소장은 국제자연보호연맹에서 오래 일하다가 2005~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부소장을 거쳐 작년 소장직에 올랐다. 이날 투어 중에도 직업정신을 내비쳤다. "저 전등은 언제 단 거지요?" "누전 위험은 없나요?" "화재 사고 대비는 어떻게 하지요?" 유산 보존책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신 소장이 "스프링클러 장치가 돼 있다"고 하자, "몇 년 전 큰 문(숭례문)이 불탄 적이 있지요?"라고 되물었다. "방문객이 하루 5000명꼴로 연 150만명쯤 된다"는 소장의 설명에는 "엄청난 숫자다. 관리에 어려움은 없느냐"고 했다.

    신 소장이 "개방 시간과 범위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는데 어디까지 허용할지 고민"이라고 하자 "세계유산도시들이 똑같이 고민하는 문제다. 활용과 보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겠지만 유산의 본질적 가치는 절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번 경주회의에는 33개 세계유산도시 시장단과 세계유산도시기구 대표, 국내외 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 유산보존 전략 및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공동 대응전략을 담은 '경주 권고문'도 채택한다. 세계 250여개 도시를 회원으로 둔 세계유산도시기구가 아태지역에서 회의를 열기는 처음이다. 라오 소장은 "아태지역 첫 회의가 경주에서 열리는 것은 한국이 세계유산 보존 노력에서도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는 '한류' 이야기도 했다. "2주 전 미얀마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이 온통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이야기를 해요. 나는 인도 문화를 즐길 줄 알았는데 (웃음). 아웅산 수치 여사도 한국 이야기를 하더군요." 라오 소장은 "오늘 와서 보니 한국 문화유산이 인류가 함께 보존에 노력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알겠다"고 했다.

    어느덧 점심시간. 라오 소장은 궐 밖 한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종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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