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북부지방법원의 배심원단 9명은 24일(현지 시각) 삼성의 스마트폰·태블릿PC 제품이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 디자인과 기능 관련 특허 6건을 침해했다며 10억5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삼성이 제기한 애플의 통신 기술 특허 침해 혐의에 대해서는 5건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평결은 하루 앞선 국내 소송에서 삼성이 애플에 '판정승'을 거둔 것과는 정반대다. 서울중앙지법은 애플이 삼성의 무선통신 기술 특허 2건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 디자인' 같은 애플의 디자인 특허는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 영국과 독일 법원에서도 삼성 갤럭시탭이 애플 아이패드를 베끼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처럼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판결을 이끌어내는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관련이 있다. 배심원들이 어려운 기술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눈에 띄는 디자인과 기능 특허를 더 중시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안이 복잡한 탓에 평결이 연기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2시간 만에 심리를 마쳤다는 사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애플의 선전(善戰)을 기대하는 배심원들의 심리가 평결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미국 법원이 다른 제품들과 구분되는 외형이나 느낌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를 폭넓게 인정한 사실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트레이드 드레스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선 보편화돼있다. 이번 평결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해서도 디자인과 관련한 새로운 지식재산권 개념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한 달 안에 나올 담당 판사의 판결도 배심원단 평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항소(抗訴) 의사를 밝혔지만 어찌 됐든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배상금 10억달러보다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게 된 게 더 큰 문제다. 이번 평결이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허 소송 50여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삼성은 남은 소송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역량을 서둘러 키워 '모방' 시비에서 원천적으로 벗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론 세계 최고 전문가들을 영입해 삼성 내부의 디자인 역량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론 국내 대학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도록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하는 교수를 영입하고, 교육 시설을 강화하는 데 삼성이 기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설] 모바일 투표 불공정 시비에 휘말린 민주당 경선
[사설] 경력자 판사 임용制, 공정·투명한 선발에 성패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