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클럽에 뜬 첼로 거장… 클러버(clubber)들 들썩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입력 2012.08.25 03:01

    미샤 마이스키, 바흐 등 연주 "보수적 클래식 이미지 바꿀 기회"

    23일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클럽 엘루이. 흥겨운 댄스음악에 맞춰 청춘 남녀들이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시간이지만, 이날 디스크자키(DJ)가 집어 든 음반은 조금 달랐다. 일렉트로닉이나 테크노 음악 대신 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바흐의 오르간 작품이 흘렀다.

    잠시 후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한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64)가 클럽 한복판 무대에 올랐다. 클럽을 가득 메운 2000여명은 클럽 문화를 상징하는 야광봉과 팔찌를 흔들며 환호로 그를 맞았다. 백발 사자 머리의 마이스키는 단아한 연미복 대신 자신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검정 라운드 티셔츠의 편안한 차림이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23일 서울 청담동의 클럽 엘루이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이스키를 빙 둘러싼 클럽의 청춘남 녀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말을 아끼고 연주에만 집중하는 관습과 달리, 이날 마이스키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부터 건넸다. "클래식 음악은 낡고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오늘은 색다를 것 같네요. 젊은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할 기회가 됐으면 해요."

    마이스키가 '첼로의 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하자, 클러버(clubber·클럽 관객)들은 난간과 계단에 기대거나 바닥에 편안히 앉아 경청했다. 18세기 바흐가 작곡한 클래식 무곡(舞曲)이 21세기 서울 무도장(舞蹈場)에 울려 퍼졌다.

    어두컴컴한 무대 위로 노란색 조명이 흐르고, 대형 전광판에서는 쉼 없이 영상이 바뀌는 풍경은 여느 클럽과 같았다. 하지만 '클래식, 클럽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에서는 여느 클래식 공연장과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연주 도중에도 관객들이 대화를 나누고,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꺼내 자유롭게 촬영하며, 클럽 뒤편 바에서 음주와 흡연도 했다. 클럽 바텐더 김민정(23)씨는 "평소 귀가 얼얼할 만큼 틀어대는 일렉트로닉 음악 대신 클래식이 흐르니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대학 친구와 함께 왔다는 회사원 봉우리(26)씨는 "연주를 들으며 친구와 얘기 나눌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이 이색 공연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이 기획한 '옐로 라운지(yellow lounge)' 시리즈의 하나다. 2004년 독일 베를린의 클럽에서 첫 클래식 공연이 열린 이후, 에머슨 현악 4중주단과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 힐러리 한 등이 참여하면서 뉴욕과 런던, 암스테르담, 잘츠부르크 등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지난 5월 처음 도입했고, 올해 일본 도쿄와 싱가포르 클럽 공연도 예정돼 있다.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보였던 클래식과 클럽의 만남을 통해 젊은 층에 다가가고 음반 시장의 불황을 타개하려는 시도다.

    이날 전반 15분과 후반 25분 등 40여분간 연주한 마이스키는 후반부 스페인 무곡 사이에 그윽한 첼로의 저음으로 작곡가 김연준의 가곡 '청산에 살리라'를 '깜짝 선물'했다. 마이스키가 한국 클럽 관객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퇴장하자, 다시 일렉트로닉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클럽은 얌전하게(?)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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