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박근혜에게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는 불편한 곳이었다. 박근혜는 2007년 자서전에서 "오히려 어린 우리(삼남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투성이였다"며 "정작 (그곳에서 사는) 당사자에게는 감옥이 될 수도…"라고 회고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혹시라도 박근혜와 동생들이 특권 의식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해 각종 금기 사항을 정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에 대해 "나는 나라 전체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는 동안 하루도 맘 편히 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각오가 아니라면 나라 살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정치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박근혜는 10·26 사건 이후 아버지에 대한 격하 운동과 자신에게 등 돌린 세상을 경험하면서 권력과 정치의 '무상함'을 느꼈다. "권력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지므로 허무하다"는 것이다. 태종의 묘인 헌인릉에 다녀온 뒤 적은 소감문에서도 "이생에는 한계가 있고 임금조차 영원히 이 땅의 주인은 될 수 없다. 태종이 남길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이 생을 살다 갔는가 하는 것일 뿐"이라고 적었다.
권력이 배신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이 시절 각인됐다. "사람들은 뚜렷한 신념 없이도 권력을 좇아 이쪽과 저쪽을 쉽게 오간다. 한결같은 정치 철학으로 일관된 정책을 펴나가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고 했다.
박근혜는 1990년 9월 2일 일기에선 "권력은 클수록 예리한 칼"이라며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의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잘못 사용하면 자신을 죄어온다"고 했다. 또 '권세'를 술·담배·도박 등과 함께 열거하면서 "우리가 가슴이 타도록 원하고 탐내고 집착하는 것들은 우리를 희롱하고 얽어매는 역할을 한다. 이를 얻기 위해 정신을 파는 동안 참으로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 곁을 떠나간다"고 했다. 2007년 자서전에선 "어머니가 그토록 '겸손하고 겸손하라'고 당부했다. (10·26 이후) 신당동에 돌아와서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 당부는)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고도 했다.
박근혜는 지난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의 목적은 국민 개개인을 편하고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