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王, 독립운동가에게 사과하라"… 뭐가 잘못인가

조선일보
  • 이하원·정치부
    입력 2012.08.20 03:02

    이하원·정치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항의 서한'이 양국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서한 발송의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대통령의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에 대한 비판이 결정적이었다. 일본 전문가 Q씨는 "한국의 일왕 비판에 대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총리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10일 우리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일본의 대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자신들이 원하는 '독도의 분쟁 지역화'에 이용하려는 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던 일본이 급변한 계기는 지난 14일 이 대통령의 일왕 비판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학교 폭력 책임교사 워크숍'에서 한 교사가 그의 독도 방문 소감을 묻자 "(일왕이) 통석(痛惜)의 염(念)이니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했다.

    일본 정치인들은 이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예의를 잃었다", "무례하다"며 경쟁적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다 내각이 추가 '보복 조치'에 착수한 배경에도 일왕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정치권이 일왕 비판에 대해 왜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역사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부친인 히로히토(裕仁)는 1926년 즉위 후 식민 지배 시기에 우리 민족 전체를 박해하고 탄압한 인물이다. 태평양전쟁 당시엔 젊은 한국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몰고, 꽃다운 처녀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끌고 갔던 '특A급 전범(戰犯)'이다. 우리 민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남북 분단도 그가 통치하던 일제 식민 통치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일본 왕실에 '한국에 오고 싶으면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주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요구다. 이 대통령의 발언 시점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1970년 12월 추운 겨울에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유태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일왕을 신성시하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을 의식해 가급적 일왕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삼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했던 것이 비정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일왕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전범인 일왕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일본 왕실의 존속을 인정해줬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히로히토-아키히토 부자(父子)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있을 때만 몇 ㎝씩 더 과거사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는 헤이세이(平成)를 연호(年號)로 사용하고 있다. 사기의 '내평외성(內平外成)'과 서경의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인용한 헤이세이는 '온 세상과 일본 안팎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왕실이 내세우는 평화를 위해선 진실로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용기부터 길러야 한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사실을 상기해보라. 일왕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아키히토도 브란트처럼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사진을 역사에 남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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