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해결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의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 발언에 유감을 밝히는 서한을 보내왔다. 일본 정부는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도 하고, 일부 일본 언론은 미·일(美日) 군 수뇌부가 23일 일본 도서(島嶼) 공동 방위 문제를 협의하면서 독도 문제도 함께 다룰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헌법에서 일왕을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다. 일본 언론은 지금도 일왕을 지칭할 때 '천황폐하(陛下)'란 민주 사회에선 낯선 용어를 쓰고 일본 각료들은 일왕의 신하란 뜻으로 스스로 '대신(大臣)'이라고 낮추어 부른다. 일본 정치와 일본 문화에서 차지하는 일왕의 의미가 그만큼 특이하다.
그러나 일본이 성숙한 국가라면 지난 100여년간 일왕이 한국인에게 무슨 존재였는가도 되새겨봐야 한다.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히로히토(裕仁) 3대 일왕의 시대에 일본이 조선을 두 차례나 전쟁터로 만들고 군대로 왕궁을 포위해 나라를 강탈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수백만 조선 백성을 전쟁터와 탄광·군수공장으로 내몰았을 때, 일왕은 일본인에겐 신(神)이었을지 모르나 한국인에겐 억압과 침략과 군국주의 최고책임자였을 뿐이다.
일본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봐야 한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일왕을 존중하고 신격화한다고 하자. 그럼 일본이 국제 폭력배인 낭인(浪人)들을 조선 왕궁에 난입시켜 조선의 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불태운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일 간에 역사 문제를 말끔히 정리하자는 것은 바로 일본이 떠받드는 일왕의 이미지가 이웃 나라에선 정반대로 비치는 사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 간에는 서로 상대방 문화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과거 두 나라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특히 가해(加害)와 피해(被害)의 실상이 어떠했는가를 되살려 볼 줄 아는 역사적 양식(良識)이 중요하다.
이번에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그 서한을 주일 한국 대사관에 건네고선 그것이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공개해버린 것은 외교적 무례(無禮)다. 일본 정부는 국내 정치적 필요 때문에 한국과 한국 대통령을 망신주었다고 선전하려는 것인지 모르나 이렇게까지 외교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면 두 나라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일본이 미국을 끌어들여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의 응원군으로 삼으려 한다는 일본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것 역시 사리(事理)에 맞지 않고 동맹국 처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한일 간은 정부 간 충돌이 국민 감정 충돌로 번지면서 이중 삼중 긴장이 겹칠 조짐이 보인다. 중국의 급속한 대두로 동북아 안보의 기축(基軸)이 변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함께 이 지역의 영구적(永久的) 평화를 설계해야 하는 미래의 파트너다. 양국의 정치가들은 멀리 내다보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은 일본의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사는 얼버무리며 독도에 대한 공격적 도발을 조장해온 것이 양국 관계를 비틀어놓은 직접적 원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 외교 책임자들도 우리 정부가 우리의 의사를 관철할 가장 효과적인 외교적 행동과 수단을 선택해왔는가를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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