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위험한' 애국심 공화주의로 풀어라

    입력 : 2012.08.18 03:03

    아직도 민족주의인가
    곽준혁·조홍식 엮음|한길사|347쪽|1만8000원

    고대 아테네에는 '에피타피오스(epitaphios)'란 관행이 있었다. 전몰자를 기리는 국장(國葬)에서 낭독되는 장례 연설문이다. 국장의 의미는 각별했다. 이틀간 가족장이 치러진 후부터 사자(死者)들은 공공 자산이었다. 장례 행렬에는 10개 부족을 상징하는 나무관 10개에 이어 빈 상여가 하나 더 따랐는데 실종자들을 뜻했다. 국장의 절정이 에피타피오스 낭독이었다. 아테네 제국의 전성기에 작성된 페리클레스의 에피타피오스는 '조국에 대한 예찬'으로 넘쳤다. 국장은 희생자의 추모와 유가족의 위로를 넘어 나라 전체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면화하는 자리였다. 시민에게는 제국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애국심을 촉구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런 페리클레스식 애국심에 반기를 든 이도 있었다. 아테네 제국 쇠퇴기의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 '고르기아스'편에서 '제국의 힘에 의존한 애국심'을 비판했다. 제국의 힘을 찬양하는 애국심은 국가의 끝없는 자기 확장을 낳고 결국 신중하지 못한 판단에 이르게 된다는 것. 실제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 제국은 무모한 시칠리아 원정에 나섰다가 쇠퇴의 길을 갔다.

    ◇근대국가의 애국심, 민족주의

    애국심이 민족주의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였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초기만 해도 자유·평등·박애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다. 혁명의 열기는 공화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분출했다. 하지만 혁명적 애국심은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흐름과 결합하면서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변해갔고, 19세기 말 유럽을 뒤덮은 배타적 민족주의 경쟁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시민의 미덕'인 애국심은 이제 민족주의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민족주의는 어떤 면에서 진보였다. 민족 내부에는 평등을 가져왔고 밖으로는 반(反)제국주의 저항의 토대였다. 민족국가의 주권론은 약소국의 방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폐해도 따랐다. 민족국가로 뭉치는 과정에서 하위 언어나 문화는 흡수되거나 탄압됐다. 분쟁과 충돌, 인종 청소, 민족 학살 등의 비극도 속출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피를 부르는 갈등의 주축도 민족 갈등이다.

    ◇민족주의 대안: 공화주의적 애국심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은 가능한가. 저자들의 출발점은 '획일적이고 갈등 유발적인 배타적 민족주의 논리에 대한 반성'이었다. 공교롭게도 책 서문의 한 대목은 최근 다시 고조된 한·중·일 갈등을 예견한 듯하다. "영토 분쟁과 시장 경쟁, 그리고 과거사 문제와 불균등한 힘의 분포가 다시 민족주의와 결합되고, 이러한 결합과 재결합의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새로운 얼굴로 동아시아를 재구성하고 있다.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가 제공하는 기억과 망각의 도식은 냉전적 사고에 짓눌렸던 과거보다 더욱 냉전적인 대립을 가져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시되는 해법은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다. 고전적 공화주의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과 '시민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에 대한 애정'을 구별하려 했다. 하버마스의 헌정적 애국심(constitutional patriotism)도 비슷한 개념이다. 유럽통합을 염두에 둔 이 개념은 애국심의 근거를 문화적 공통 유산의 맹목적인 애착에서 찾는 게 아니라 헌법의 기본 이념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충성에서 찾는다.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무조건 아름답거나 다른 공동체보다 낫다는 우월 의식을 수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국이 다른 나라에 지배를 행사하지는 않는지 주목하며, 지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의 자유에 관심을 가진다.

    문제는 다시 현실이다. 국가를 넘어선 통합으로 주목받았던 EU마저 지금은 뒷걸음질이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들을 받아들인 프랑스의 정체성을 소홀히 여겼다"고 했고, 캐머런 영국 총리도 "영국 국가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경제·사회 불안으로 민족주의는 다시 드세지고 '이성적 애국심'은 힘을 잃고 있다.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기껏해야 국경을 넘는 이웃 사랑이 국가와 국민에게 해가 되지 않는 비배타적 이익의 영역에서만 탈민족주의적 세계시민주의자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배타적 이익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애국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앞의 현실은 아직도 민족주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