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로마네 콩티

조선일보
  • 김광일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12.08.17 23:30

    1780년 파리 대주교는 '로마네 콩티'를 가리켜 "포도나무가 흘린 피가 병 속에 들어가 비단이 됐다"고 찬미했다. 이 프랑스 부르고뉴산(産) 와인은 애호가들 사이에 가장 이름 높은 명품이다. 로마네 콩티라는 이름엔 지명과 소유주가 들어가 있다. 이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이 보슨-로마네 마을에 있고 소유주가 콩티 공작이었다. 평론가들은 이 와인에 최상급 찬사를 바친다. "제비꽃 다발에 묻힌 체리향이 심오한 루비옷을 입었구나. 오로지 왕의 식탁에 오르라."

    로마네 콩티는 학교 운동장 한 개 반쯤 되는 1.63㏊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품종은 기후에 민감하고 수확량이 적은 '피노 누아르'를 주로 쓴다. 2003~ 2007년 한 해 평균 5000병쯤 나왔고 적은 해는 3000병 남짓이었다. 프랑스혁명을 겪은 뒤엔 잠시 국가 소유가 됐다가 19세기부터 민간 소유로 이어지고 있다. 향과 빛깔은 물론 혀 위에 얹히는 무게감에서 다른 와인이 따를 수 없다는 명성도 계속됐다. '전설이 함께하는 와인의 완벽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로마네 콩티는 국내에 90년대 초반부터 수입됐다. 와인 붐이 일기 전이었다. 이 명품을 알아보고 사가는 사람이 없어 수입회사 사장이 혼자 마셔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은 로마네 콩티 한 병에 다른 와인 11병을 함께 넣어 '12병들이 케이스'로 판다. 올해 40케이스를 들여왔고 한 케이스 값은 3000만원 선이다. 로마네 콩티 한 병 값이 그 돈의 절반쯤을 차지한다. 미리 정해진 호텔·기업·개인에게 100% 예약 판매만 하기 때문에 기다린다고 살 수 있는 와인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값비싼 술이 뇌물로 쓰이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0년 수원지검 수사관들이 성남시장 집에 들이닥쳤을 때 500만원짜리 '루이13세' 코냑 세 병, 1200만원이 넘는 로열살루트 50년산 한 병이 나왔다. 판교 택지를 개발할 때 건설업자가 시장에게 수의계약을 하게 해달라며 뇌물로 건넸다고 한다. 엊그제 신문엔 로마네 콩티도 뇌물로 등장했다.

    ▶횡령과 탈세에 쫓긴 어느 기업이 서울 강남의 피부과 원장에게 세무 조사를 무마시켜 달라며 현금과 로마네 콩티를 갖다줬다고 한다. 이 병원에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드나들자 원장도 덩달아 힘있는 사람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로마네 콩티는 호텔에서 경매 형식으로 팔면 2000만원을 넘는다고 한다. 웃어른을 찾아뵐 때, 친척·친구 집에 들를 때 몇 만원짜리 찬 술 한 병을 들고 가는 게 우리네 인사였다. 구린내 나는 동네에서 자동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술병이 오가는 걸 보니 술맛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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