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북한 같은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의 도전에 둘러싸인 한국으로서는 냉전시대를 이겨낸 자유주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이면서 총리 후보까지 지낸 정치인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65) 박사는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적'과 싸우고 있는 최전선"이라고 했다. 그는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이 시작한 '냉전자유주의(Cold War Liberalism) 프로젝트' 초청 석학으로 방한했다. 20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대가인 이사야 벌린 평전의 저자로 국내 출간 기념회도 겸했다. 그는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둘러싼 세계적 논쟁의 중심에 있는 성공 사례"라며 "한국인 모두가 그 공을 공유해야 하며 자랑스러워할 만하다"고도 했다.

이그나티에프 박사는“오늘날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적 성취에 관한 모든 논쟁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지금 왜 냉전자유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과두제(authoritarian oligarchy)의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이 대표적이다. 과거 소련처럼 팽창주의적이지는 않지만 자유민주주의로의 의향도 없는 체제다. 벌린은 역사가 필연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지금의 중국 역시 민주주의로 귀결될 거라 믿을 근거가 없다. 러시아도 북한도 마찬가지다."

―세계 협력을 말하는 시기에 대결을 말하는 것 같다.

"대결이 아니라 처한 상황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벌린은 공산주의를 싫어했지만 러시아의 문화는 높이 평가했다. 지금의 중국이나 러시아도 위대한 나라다. 하지만 이들 체제의 본질은 일인, 소수, 일당(一黨) 체제다. 이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의 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벌린은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상업적 이익과 흥정돼서는 안 된다고 봤다. 중국,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눈감아서는 안 된다."

―최근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던 한국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에 잡혔다가 풀려났다.

"내가 지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가르치고 있는 게 인권이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고 인권 보호는 보편적 의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정부로서는 외교 현실을 감안하면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못 본 체해서는 안 된다. 인권 운동가들은 할 일을 하되 국제적 관심과 지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인권 운동도 나 홀로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보는 눈이 많으면 권위주의 국가들도 주저하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북한 체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의회민주주의 공전(空轉) 등으로 자유민주주의는 불신받고 있다.

"내가 정치를 해봤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잘 안다(웃음). 그럼에도 권위주의보다는 확실히 낫다. 역사가 저절로 자유민주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 결함이 없을 거라는 근거도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시장이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은 지금의 금융위기가 중국 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준다고 여길지 모르나 일당지배가 경제적 자유와 얼마나 양립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벌린의 주요 저작으로 칼 마르크스 전기가 있다. 최근 마르크스 르네상스를 어떻게 보나.

"벌린은 마르크시즘에 아주 비판적이었다. 벌린은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시킬 용의가 있는 사람은 결국 둘 다 잃게 될 것이라고 봤다. 벌린의 위대함은 자신의 적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역사 앞에서 겸허한 태도, 잘못에 대해 단호히 저항하는 자세, 관계에 있어서 개방성, 반대편으로부터 배운다는 열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 냉전자유주의 프로젝트

2차대전 이후 미국·소련를 필두로 한 자유·공산진영이 이념·체제 대결을 벌이는 동안 서방 지식인들은 국가안보와 함께 민주주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까 고민했다. 그 산물이 '냉전자유주의'였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세기 자유주의의 토대를 닦은 이사야 벌린(1909~1997), 마이클 오크숏(1901~1990),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1899~1992), 칼 포퍼(1902~1994), 레이몽 아롱(1905~1983),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 등을 재조명한다(사진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 6명의 평전을 차례로 번역 출간하고 저자 초청 콘퍼런스도 열 계획이다.